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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6.06.12. 주일오전 -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니라(에베소서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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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에베소서 4장 11-16절




저희 집에는 아이들의 이런 저런 모습을 담은 사진이 꽤 많지만, 제가 그런 사진들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사진이 두 장있습니다. 큰 아이 사진은 아이가 두 살 때, 커다란 핫도그를 입에 물고 아이들 엄마하고 같이 찍은 사진이고, 둘째 아이 사진은 아이가 어린이 집에 다닐 때, 마트에 갔다가 저를 물끄러미 올려다 보는 모습을 폰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이 두 사진은 제가 사진들을 들여다 볼 때마다 제 마음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지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사진들을 그렇게 좋아하고 들여다 볼 때마다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되는 이유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 때가 제일 귀엽고 예뻤기 때문입니다. 모습도 그렇고 말도 잘 듣고… 모든 것이 제일 마음에 드는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대개 부모들은 그 시기의 자녀들을 보면서 ‘더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지만, 진짜로 그 소원이 이루어지면 큰 일 납니다. 나는 70이 넘었는데, 자녀는 여전히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핫도그를 입에 물고 나만 바라다 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이들은 태어났으면 자라야 합니다. 중간에 정말 징그럽게 말을 듣지 않아서 실제로 징그러워지기도 하고, ‘원수가 그 집안 사람들이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저절로 떠올리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는 자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어엿한 ‘한 사람’이 되어서 자신의 인생을 살면서 세상의 한 모퉁이를 책임지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많은 성도들이 ‘구원’이라는 말을 생각할 때,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신앙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방향을 잃고 혼란을 겪는 것을 많이 봅니다. 우리는 ‘구원’에 대해서 처음 들을 때 ‘예수를 믿으면, 혹은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로 처음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게 되지요. 여러분은 모두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으셨나요? 그러신 줄 압니다. 축하합니다. 정말 큰 복 받으신 겁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구원의 전부가 아닙니다. 불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구원의 전부가 아닙니다. 성경은 예수 믿고 ‘얻게 되는 구원’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지만, 그 이후에 우리가 ‘이루어가야 할 구원’이 있다는 것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예수 믿고 얻게 되는 구원은 마치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꼭 이루어 가야 한다고 말하는 구원은 그 아기가 이제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것과 같습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난 생명이라고 그 생명이 불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그 생명은 아기는 살아있고, 아기의 생명은 아기의 생명으로써 온전합니다. 그러나, 아기의 생명은 거기서 멈추면 안됩니다. 아기의 생명이 가지고 있는 많은 장점과 아름다움이 있지만 아기의 생명은 계속 자라나서 어른의 생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서 구원을 얻는 것은 아기가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 예수 믿고서 얻게 되는 새 생명은 그 자체가 온전한 새 생명이지만 그 생명은 앞으로 더 온전하고 성숙한 생명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제로 해서 그 사람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람에 눕혀놓고서 그저 예뻐하시기 위해서 주신 생명이 아니라, 앞으로 자라나고 성숙해 갈 것을 바라보시면서, 한 사람의 노릇을 제대로 해 낼것을 기대하시면서 그것을 목적으로 해서 주신 새 새명, 그것이 우리가 구원얻을 때 얻은 새 생명입니다. 


성도 여러분, 새 생명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면 그 생명을 성숙하게 성장시키는 일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구원얻는 일이 중요하다면 그 구원을 이루어 가는 일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성도 개인에게도 그렇지만 교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 개인도 성숙해 가야 하고 교회도 성숙해 가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도는 그 교회의 지체인데, 몸만 자라고 지체는 자라지 않을 수 없고, 지체는 자라는데 몸은 그대로 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가 성도로서 성숙해가고 성장해 가는데 목표를 두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 일에서 진전을 보이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 교회는 또 그런 목표를 가지고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 말씀은 ‘교회’에 대한 말씀인데요. 그것은 교회가 머리되신 예수님의 생명과 은혜로 세상을 가득 채우려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 부름받고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향한 이런 부르심을 알고 이 부르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바른 길을 알려줄 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한,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그 계획을 이루시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은혜로 공급해 주실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기대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 밖에서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그 위대한 계획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을 흉내내는 삶을 살아가려고 애쓸 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약속하신 은혜를 아낌 없이 부어주실 것입니다. 필요한 것이 무엇이건 직접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실 은혜가 아무리 엄청나다고 해도 그 은혜를 담을 그릇이 너무 작거나,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못하다면 그 은혜를 제대로 담아낼 수 없고, 결국 맡겨진 소명도 제대로 감당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은 먼저 우리의 그릇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충분하게 담을 수 있게 준비 되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준비되어야 할까요? 어느 정도로 준비되어야 예수님의 은혜를 담는 그릇이 되고 그 그 은혜를 세상에 흘려보내는 역할을 제대로 해 낼 수 있을까요? 답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입니다. 예수님 수준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의 성장목표로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은 많이 둔해졌지만 예전에는 그래도 아이디어가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또 만들어 보고 싶어 하는 것도 많고 그랬습니다. 먼저 갑자기 무언가를 만들어 보아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머리로 이렇게 저렇게 그것에 대한 그림을 그립니다. 상상만으로도 너무 즐겁습니다. 그래서 얼른 나가서 재료를 사옵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것을 만들겠다고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금새 좌절감이 찾아옵니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 머리와 손이 따로 놀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머리로는 토끼를 만들고 있는데 손은 쥐를 만들고 지렁이를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뭔가 제대로된 작품이 나오려면 머리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머리 속의 아이디어와 상상력, 그리고 설계를 그대로 현실로 옮겨낼 수 있는 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손이 머리의 수준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어야 그럴 듯한 작품이 나옵니다. 왜 우리가 머리이신 예수님 수준까지 성장해 가야 하지요? 그래야 예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만들려고 하시는 작품을 만드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려 지는 곳,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채워져 가는 그런 아름다운 곳으로 바꿔가고 싶어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라고, 머리이신 예수님의 수준에 이를 때까지 자신을 성장시키고 성숙시켜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성숙은 두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선, 우리의 성숙은 우리 마음과 생각의 그릇을 키우는 그런 성숙이 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인격이 성숙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기 중심적인 사람에서 자신과 관계맺고 있는 다른 사람들 중심으로 변화되어 가며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뜻입니다. 신앙이 성숙해져 간다는 것은 이런 일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처음에 하나님을 믿었을 때는 철저히 나 중심입니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는 무엇을 손에 쥐기만 하면 모두 다 자기 입으로 가져 가듯이 처음 새 생명을 얻은 성도들도 대개는 이전의 습관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기 중심적으로 가져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신앙이 성숙해 가면 그 신앙의 무게 중심이 자기 자신에게서 서서히 하나님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 때부터는 나의 관심과 나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관심사 쪽으로 삶의 중심이 움직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기쁘게 해 주실까 하는 것보다는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변화가 우리 안에서 일어나게 되면 우리는 저 밑바닥 부터 근본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의 크기가 점점 더 하나님처럼 크고 넓어지게 됩니다. 이 작은 가슴 속에 하나님 나라를 담게 되고 온 우주를 담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우리의 성숙은 우리의 수준을 높이는 성숙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미숙하면 미숙할수록 적당한 것을 좋아하고 무엇이든 적당히 하려고 합니다. 감각적인 것을 좋아하구요. 그러나, 성숙해가면 성숙해 갈수록 점점 더 온전한 것을 찾고 또 본질적인 것을 찾습니다. 무엇이든 제대로 된 것을 좋아하게 됩니다. 그 사람의 내면이 이미 그런 것에 대해서만 만족을 누릴 수 있는 수준으로 수준이 높아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해 갈수록 그 사람은 그만큼 더 온전한 것을 찾고 본질적인 것을 구합니다. 또 영원한 것을 위해서 투자하며 살게 됩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속 사람이 이미 예수님의 수준에 점점 다가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일어나게 되는 변화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내면은 이렇게 성숙해 가지 않고, 계속해서 어린아이의 수준으로 고정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14절은 그것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미성숙한 사람의 가장 가장 큰 약점 중 하나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분별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십대가 되고 특히 십대 중반이 되면 그 이전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다가 아주 자주 사용하게 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다 알아서 해.”라는 말입니다. 아마도 십대 중반에 특히 더 자아가 강해지고 독립적인 인격체가 되려는 욕구가 강해지기 때문에 그럴텐데요. 그렇지만 사실 아이들 중에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아이는 거의 없습니다. 의욕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도대체 뭐가 다 알아서 하는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제대로된 분별력이 아직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숙함이란 이 분별력을 갖추는 것을 말하고 또 그렇게 분별한 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 영혼에 적용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은 이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딴에는 다 알아서 하는 것 같지만 항상 영적으로 불안정하고 위험합니다. 오늘은 이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가다가 내일은 저 사람에게 귀를 내어 줍니다. 오늘은 이 장단에 춤을 추다가 내일은 또 저 장단에 몸을 맡깁니다. 이 설교에도 아멘하고, 저 가르침에도 또 아멘합니다. 하나는 약이고 하나는 독인데 모두 맛있게 받아 먹습니다. 영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영혼이 그리 불안정하니 삶 또한 그렇습니다. 삶에도 일관성이 없습니다. 이 사람이 이 말하면 이렇게 움직이다가 저 사람이 저렇게 말하면 또 저쪽으로 갑니다. 세상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굉장히 불안해 하고 뭔가 크게 뒤쳐진 사람이 된 것처럼 여깁니다. 세상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너무도 쉽게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내어 줍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말씀이 알려주는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의 특징이고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고 성숙해 져야 하는 아주 중요한 이유입니다. 


미성숙함은 우리의 삶을 모든 면에서 분별력 없는 불안정한 삶이 되게 만들고 참되고 온전한 것들로 채워지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귀한 일들을 이루지 못하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우리 자신이라는 좁은 틀 속에 가두어 놓습니다.  미성숙함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이런 상태로 남아있는 것, 그리고 이런 상태로 남아있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고, 누구도 얻는 것이 없는 삶을 계속 이어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 수준으로 계속해서 자라갈 수 있을까요? 일단 우리에게 그런 성장에 대한 의지와 소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당연한 것이니까 이것은 전제로 해 놓고서 그 답을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두 주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부족함이 없는 은혜와 선물에 대한 말씀들을 살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4장 1절부터 시작되고 있는 말씀 속에는 그런 은혜가 이미 충분하게 주어졌다는 사실과 그런 은혜들을 주신 이유에 대한 설명은 들어 있지만 구체적으로 그 은혜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은혜만큼은 아주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11절과 12절인데요. 찾으셔서 한 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두 구절이 말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의 교회가 세워지고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종들로 제대로 준비되어져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려면 말씀을 맡은 많은 사역자들이 필요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말씀 사역자들을 세우시고 교회를 위한 아주 특별한 은혜의 선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교회가 탄생하고 그 안에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꾼들로 준비되고 세워지려면 말씀의 일꾼들이 필요했습니다. 먼저 사도가 필요합니다. 이들은 처음 교회의 교회됨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전도자도 필요합니다. 구석 구석 복음을 선포해야 했으니까요. 또 그 당시만 해도 성경이 확정되어 있지 않았고 교회마다 성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서 알려줄 수 있는 선지자들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계속 성도들과 함께 교회 안에 있으면서 말씀으로 성도들을 양육할 목사, 그러니까 성경교사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들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서 특별하게 주신 대표적인 은혜요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없으면 교회와 성도가 태어나고 자라며 성숙해 가는 일이 불가능하니까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역자는 성도와 교회를 위해서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이고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이런 은혜의 선물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이들 자신이 특별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맡겨신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와 성도들의 모든 것입니다. 젖이 되고, 음식이 되고, 은혜가 되고, 기쁨이 되고, 소망이 되는 것, 능력이 되고 방패가 되고 칼이 되는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 사역자들이 바로 그 말씀을 맡은 자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교회와 성도들을 위한 특별한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자. 이제 답은 얻으셨습니다. 여러분을 예수님의 수준으로 계속해서 자라가게 하고, 또 그래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담는 그릇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수단이 무엇인지 이미 들으셨습니다. 그 수단이 무엇이지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맡아서 여러분을 가르치는 ‘목회자들’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런 귀한 선물들을 어떻게 받고 또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가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남자친구 사용 설명서’, ‘여자친구 사용 설명서’와 같은 제목의 책들이 잠깐 인기를 끈 적이 있었습니다. 제목들을 보면서 참 희안한 책 제목도 다 있다고 생각했었는데요. 그런데, 어찌보면 이런 책들은 꼭 필요한 책들인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중요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도대체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그 적절한 사용 방법을 몰라서 그들이 줄 수 있는 유익의 대부분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책들은 그런 일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책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안타까운 일은 목회자와 성도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선물로 주신 목회자의 올바른 사용방법을 몰라서, 목회자로 부터 얻어야 할 진짜 얻어야 할 유익은 얻지 못하고 부수적인 것들만 얻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게 전부이고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목회자를 생각할 때,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주신 특별한 은혜이고 선물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목회자를 주신 것이 특별한 목적이 있다는 뜻이고 교회와 성도가 그 목적에 따라서 목회자를 사용할 때, 그게 가장 올바르고 효과적인 목회자 사용법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 목적이 무엇일까요? 이미 살펴본 대로 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며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와 성도가 목회자를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사용할 때, 그게 목회자를 가장 유익하게 사용하는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목회가 교회에서 바른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고 가르치지 않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목회자 자신의 잘못입니다. 저도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그런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만약에 자신이 가르치는 성도들이 그런 참된 것에는 관심이 없고 계속 다른 것만 원할 때, 목회자가 끝까지 그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저는 목회자도 성도들을 지켜 주어야 하지만 성도들도 목회자를 지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목회자와 성도로 이루어진 몸이고, 목회자와 성도는 역할만 다를 뿐 그 몸의 지체라는 점은 똑같으니까요. 목회자는 바른 말씀을 정직하게 전하고 가르침으로써 성도들을 지켜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목회자에게 바른 말씀을 정직하게 선포하고 가르칠 것을 요구함으로써 목회자들을 지켜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몸이 바르고 든든하게 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바른 말씀이란 어떤 말씀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준비를 시켜주는 말씀’, ‘교회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는 말씀’, ‘교회와 성도를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게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런 일들을 위해서 가르쳐 지고 선포되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설교가 바른 설교입니다. 은혜를 느끼고, 위로를 받고, 격려를 얻는 것!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을 발견하는 것! 뭔가 적용할 꺼리를 얻는 것! 이런 것들도 성도들이 설교를 듣고 성경을 배우는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이런 것들은 아무래도 부수적인 것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먼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저를 선물로 주신 그 목적에 맞게 저를 사용하고 계신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여러분에게 전하는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을 근본적으로 성숙시키실 것을 기대하시면서 설교에 귀를 기울이고 계신지 말입니다. 


말씀은 우리 자신을 근본부터 바꿔내는 능력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의 크기를 예수님처럼 크게 만들어 주고, 그래서 우리가 온 세상을 가슴에 품고 온 세상을 하나님 나라처럼 가꿔가려는 꿈을 품게 만드는 능력, 그리고 우리를 성숙시켜서 모든 면에서 있어서 분별력을 갖추어서 흔들림 없는 분명하고 바른 삶을 살게 해 주는 능력! 이런 능력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능력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숙과 성장을 위해서 말씀을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지고 새로워질 것을 기대하시면서, 생각과 마음이 예수님만큼 크고 넓어지는 것을 기대하시면서 말씀을 들어 주십시오. 저를 꼭 그렇게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바른 사용법에 맞게 메뉴얼 대로 사용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범사에 우리의 머리되신 예수님의 수준으로 계속해서 성장해 갈 것이고, 그렇게 성장하는 만큼 더 크고 풍성한 예수님의 능력과 은혜를 담는 그릇이 되고, 그 은혜와 능력을 세상으로 흘려 보내는 귀한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광현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범사에 예수님에게까지 자라나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크신 은혜 가운데 거하며, 맡기신 소명 잘 감당해 내는 아름다운 성도들의 몸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