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7.18.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마가복음 1553-1532)


20160718D (#1).mp3.zip





설교일 : 2016년 7월 19일 화요일




 

우리는 때로 ‘장담’이라는 것을 합니다. “하늘이 두 쪽나도…”, “내가 죽어도…”, “절대로…”, “내가 이 약속을 어기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들을 사용해 가면서 지금 자신이 말하는 것이 100퍼센트 진실되다는 것과 자신이 약속하는 것을 절대로 어기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물론 일부러 남을 속이려고, 그저 자신을 믿게 하려고 그러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그 때는 정말 자기 마음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결국에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그런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당장에는 그 말이 자신에게 아무런 손해나 어려움을 주지 않는 상태에서 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신은 죽어도 믿음은 지킬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 말이 거짓말은 아니겠지만, 정말 그럴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진짜 믿음 때문에 목에 칼이 들어오는 상황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상황이 자신을 어떻게 변하게 만들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의 장담을 실패하게 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대단한 일이 아닐 때도 많습니다. 별 것 아닌 유혹이나 작은 이익도 우리에게 그런 역할을 하기에는 충분합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하인들이 예수님을 끌고 가게 되자 대부분의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버렸습니다. 사실 이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고난 받고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실 때 자기들은 죽을지언정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그런 일이 벌어지자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부터 챙겼던 것입니다. 그래도 그 중에서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님을 뒤따랐던 한 청년과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신실했고 의리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청년은 예수님을 끌고가는 사람들에게 붙들릴 상황이 되자 홑이불을 벗어 버리고 알몸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이 계신 관정까지 따라들어갔지만 결국 예수님 말씀대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씩이나 그것도 맹세까지 해 가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특히 비겁하고 나쁜 사람들이어서 그렇게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정말 자신이 따르거나 함께 하거나 하는 사람의 가치를 알고, 그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그래서 그 사람에게 깊은 헌신을 한 사람들은 때로 자기의 큰 이익을 포기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목숨을 걸면서 까지 끝까지 신의를 지킵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처럼 그저 자신들이 얻으려고 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누군가를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제자들처럼 그렇게 쉽게 변질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끝까지 신실해야 합니다. 믿음을 지켜야 하고 하나님과의 신의를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맞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베드로의 모습보다는 오히려 자신도 모르게 또 실수하고 범죄한 후에 눈물을 흘리며 뉘우치며 회개하는 베드로의 모습, 그렇게 자신의 부족함과 악한 모습을 발견하고 그 나약함 앞에 무릎꿇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모습이 우리의 진짜 모습과 더 가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은 장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저 신실하고 진실하고 변질되지 않겠다는 소원을 품고서 묵묵히 자기 길을 가야하는 존재이고, 그러다가 실수하고 그러다가 넘어지고 후회하고 누위치며 은혜를 구해야 하는 존재이지요. 우리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며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게 되고, 신앙은 은혜가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은 우리가 의인이기 때문에, 끝까지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길을 걸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부족하고 그렇게 못난 우리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 나라를 세워가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신앙은 자신을 믿는 신앙이 될 때, 자신의 능력이나 자신의 의로움,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를 믿는 그런 신앙이 될 때 그 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신앙이 그런 일이 될 때, 신앙은 더 이상 주님을 의지하는 은혜의 일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강해지고 당당해져서 자신을 믿는 자리에 가기 보다는 차라리 약하고 부족한 자리에서 그 약함과 부족함을 더 깊이 깨달으며 더욱 더 은혜에만 의지해서 살아가는 그런 겸손한 믿음의 사람들로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