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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6.09.11. 주일오전 - 아내들이여 남편들아(에베소서 34)

20160911SM (#1).mp3.zip





설교본문 : 에베소서 5장 22절-33절

설교주제 :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흉내내야 한다.  



  1. 들어가는 말


지난 주일에 우리는 성도가 교회 안에서 나누어야 할 교제란 어떤 것이며 그런 교제가 왜 필요한지를 함께 배웠습니다. 교회 안에는 풍성한 찬양과 감사의 교제가 있어야 하고, 그런 교제가 있을 때 비로서 성도들이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회복시키며 살 수 있다는 것이 지난 주일 말씀의 주제였는데요. 제가 지난 주일에 설교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그런 교제를 원하고 있고 또 우리 교회에 그런 교제가 주는 은혜와 능력이 풍성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설교를 들으시는 여러분의 표정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자랑하는 찬양이 들려지고, 믿음에서 나오는 감사가 터져나와 우리 교회가 그런 은혜로 충만하게 해 달라고 간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부터 조금씩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혹시 제가 뜬금 없이 여러분 옆에 앉아서 한 주간 경험한 은혜에 대한 이야기, 하나님을 자랑하는 이야기를 하거든 맞장구를 좀 쳐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에게 여러분의 찬양과 감사를 좀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저도 많이 해 보지 않은 일이라 까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부탁드립니다. 혹시 제가 여러분 옆에 앉아 아무 말이 없으면 “목사님, 뭐 까먹으신 거 없으세요?”라고 물어 봐 주십시오. 그리고 제 이야기를 들으시면 용기를 내셔서 여러분의 이야기도 좀 들려주시구요.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들어도 조금씩 익숙해지면 분명히 가장 즐겁고 복스러운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에 이런 교제와 은혜가 풍성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전제 :  관계가 회복될 때, 시대가 구속된다. 


 오늘 부터 몇 주간 함께 살펴볼 것은 성도의 인간관계에 대한 말씀들입니다. 부부, 부모와 자녀, 상전과 아랫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5장 21절부터 6장 9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요. 사도 바울은 5장 앞부분에서 우리를 향해 너희는 빛의 자녀니까 빛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라고 했고, 우리에게 이 시대를 하나님의 시대로 회복시켜 갈 사명이 맡겨져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말씀들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그 일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교회가 성도들의 관계이고 교제이듯이 이 세상은 사람들의 관계로 만들어진 인간관계의 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시대의 모습은 그런 인간관계와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하나 하나의 모습으로 그려진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관계가 변하고,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나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이 세상도, 이 시대도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른 성도들을 대하는 모습과 태도가 달라지지 않으면 교회는 교회스럽게 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우리가 이 시대를 조금이라도 더 하나님께 속한 시대로 만들어 가는 방법을 말해 주면서 인간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관계의 회복이 바로 이 시대의 치유와 회복으로 이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속해 있는 어떤 곳이 ‘여기는 왜 이렇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면 여러분이 먼저 그 곳에 속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과 방식을 바꿔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조금씩 조금씩 그 곳도 좋은 사람들이 모은 좋은 곳으로 바뀌어 갈 것입니다. 


3.    예수님과 교회 사이의 관계는 부부관계의 모델이다. 


에베소서가 가장 먼저 다루는 것은 바로 부부사이의 관계인데요. 그런데, 먼저 오늘 말씀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남편과 아내라는 관계는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예수님과 교회 사이의 복되고 풍성한 관계를 흉내내고 경험하도록 그렇게 디자인하신 관계라는 것입니다. 물론 부부는 가정의 시작이고 중심입니다. 그리고 부부라는 관계는 그 자체로도 너무나 소중합니다. 정말 행복한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부부라는 관계를 애초부터 그렇게 인간적인 목적으로만 시작하지 않으셨습니다. 부부관계는 하나님과 성도들의 관계, 교회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흉내내고 더 풍성하게 맛보게 해 주시기 위해서 만들어 내신 아주 특별한 작품입니다. 31절과 32절을 볼까요?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하노라” 이 구절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관계가 있지만, 부부관계처럼 독특하고 특별한 관계가 없습니다. 원래 부부는 남입니다. 서로 전혀 상관 없는 사람, 이 세상에 있는지도 몰랐던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두 사람이 만납니다. 만나서 부부가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지요? 그 순간부터 ‘한 육체’, 그러니까 ‘한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부부의 정의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이런 관계가 있나요? 전혀 없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형제사이도, 심지어는 쌍둥이 형제라도 해도 ‘한 사람’은 아닙니다. 부부라는 관계만이 둘이 한 몸, 그러니까 혼자 있을 때보다 더 온전한 한 사람이 되는 유일한 관계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둘이 한 사람이 되는 그런 관계가 딱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머리이시고 우리들은 몸입니다. 둘이 떨어져 있으면 ‘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이 둘이 연합해야 비로소 온전한 ‘한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는 부부관계의 모델입니다. 그리고 부부관계에 대한 성경의 모든 가르침은 바로 여기서 부터 나옵니다. 예수님이 머리이시고 교회가 몸이듯이, 남편은 머리이고 아내는 몸이 된다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부관계 안에서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흉내내야 하며, 그렇게 할 때 가장 이상적이고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교회, 그리고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처음부터 같은 원리로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4.   순종과 사랑


오늘 본문의 메세지는 간단합니다. 아내는 몸으로써 남편은 그 몸의 머리로서 제 몫의 역할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부부라는 ‘한 사람’을 더욱 더 온전하게 세워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몸인 아내에게 맡겨진 역할과 의무는 ‘복종’입니다. 그리고 머리인 남편에게 맡겨진 역할과 의무는 ‘사랑’입니다. 복종과 사랑! 말만 놓고 보면 아무래도 불쾌해 지는 것은 남편이 아니라 아내 쪽인 것 같습니다. 사랑이라고 하면 뭔가 고상하고 베푸는 듯 하지만, 복종은 아무래도 아랫 사람에게 윗 사람이 하는 행동, 그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 같으니까요. 그래서 사실 여성분들 가운데는 여기서부터 걸려서 말씀에 대해서 마음을 닫아 버리시는 분들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개화된 신세대 여성들 중에서는 그런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정말 큰 일 난 것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이고 아내가 아니라 남편입니다. 복종! 까짓거 하려고 하면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 말씀의 뜻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억지로라도 할 수 있는 것이 복종입니다. 사실 우리 할머님 세대들은 다들 그렇게 살아오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사랑은 어떻습니까? 사랑은 절대로 억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복종도 의무이고 사랑도 의무라면 복종보다는 사랑이 훨씬 더 따르기 어려운 의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바울이 이 사랑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 남성분들만 25절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렇게 보니 여성분의 얼굴이 활짝 피셨는데요. 이래도 머리가 되고 싶으십니까? 몸이라는 것이 맘에 들지 않으십니까? 아니지요? 이제는 누가 더 유리한지 아시겠지요? 


순서는 뒤바뀌었지만 이제 아내들에게 주신 말씀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 볼까요? 22절로 가셔서요. 우리 여성분들만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하듯 하라” 여기 나오는 복종이라는 말은 순종이라고 옮길수도 있지만 그런다고 본문말씀이 아내들에게 요구하는 복종의 강도가 약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만히 보니까 복종이 그냥 복종이 아니네요. 교회가 예수님께 드리는 복종이네요. 성도 여러분, 교회와 성도가 주님께 어떤 순종을 드리지요? 순종하고 싶을 때는 순종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순종하지 않는 그런 순종을 드리나요? 그러면 이해할 수 있고 타당할 때는 순종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순종하지 않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와 성도는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항상 주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우리가 주님께 드려야 할 순종은 절대적인 순종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순종을 아내들이 남편들에게 해야할 순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니 또 여성분들이 더 유리하지도 않은 것 같지요? 또 다시 기분이 약간 상하려고 하시나요? 이제는 남자 분들이 자존심이 좀 회복되셨나요? 


제가 여러분을 좀 들었다 놨다 한 것 같은데요.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내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아내이든 남편이든 그대로 따르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게 순종이든 사랑이든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저 일상적인 수준의 사랑과 순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되 몸이 머리에게 순종하듯이, 교회가 예수님께 순종하듯이 그렇게 절대적으로 그리고 기쁘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게 성경의 원칙입니다. 애초에 부부관계 안에서 아내는 몸이고 남편은 머리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의 리더십을 남편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남자들이 집안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바깥에 나가서 기를 펴지 못할까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건 정설은 아닙니다만, 아마도 그것은 남자들은 가정의 머리이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머리가 머리로 대접받아야 할 유일한 곳에서 머리가 아니라 꼬리 취급을 받으니 바깥에 나가서도 꼬리처럼 사는 것이지요. 아내 되시는 성도 여러분, 남편들이 여러분 앞에서는 대단한 척 해도요 실은 아내의 칭찬과 인정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남편들입니다. 조금 모자라고 부족해도 아내가 자신을 머리로 대접해 주면 그게 그렇게 좋고 그것 때문에 힘을 내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집사님께서 처음 저희 집 둘째아이 얼굴을 보았을 때,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둘째가 첫째 찜쪄 먹게 생겼네요.”라고 말이지요. 아내들이여! 절대로 남편을 찜쪄 먹지 마십시오. 그러면 남편은 정말 흐물흐물한 찜이 됩니다. 남편들을 머리로 대접해 주십시오. 살다 보면 웬수가 그런 웬수가 없을 수도 있고, 나보다 못해 보일 때도 많겠지만 그래도 꾹꾹 참으시고 최선을 다해서 남편을 머리로 대접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게 부부관계를 세우고 가정을 세우는 성경적인 원리입니다.  


아내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드렸으니 이제 남편들 차례이지요. 남편들이여! 우리는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까?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까? 그럼요. 안 그러면 큰 일 나지요. 감히 어떻게 아내를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누구 덕에 사는데요. 주님도 남편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주님은 그냥 사랑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남편에게는 아내에 대한 리더십이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니까요. 그런데, 이 머리는 군림하고 지시하는 머리가 아닙니다. 자기 몸을 내어주는 머리입니다. 그렇게 사랑함으로써 몸을 이끌어 가는 머리입니다.  


2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타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위해서 몸을 내어주시는 사랑으로 사랑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우리를 신랑되시는 예수님의 거룩하고 순결한, 아름다운 신부로 만드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교회를 가장 아름다운 예수님의 신부로 만드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순종하고, 또 우리 스스로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거룩하게 만들어 가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 그리고 그런 일들에 기쁘게 헌신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남편이신 예수님, 우리의 머리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신부인 우리는 그런 예수님의 사랑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래서 그 분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고 거룩한 신부가 되기 위해서 기도하며 애쓰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머리이신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큰 사랑으로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 때문에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고, 조금이라도 더 거룩한 교회를 신부로 맞아들이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그렇게 움직이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8절은 말합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아내 사랑하기를 나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니라” 


남편과 아내의 관계 속에서, 남편들이 아내의 칭찬과 인정을 먹고 산다면, 아내들은 남편의 사랑을 먹고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의 사랑이 아내를 풍성하게 하고 아름답게 합니다. 행복하게 하고 웃게 만듭니다. 남편들은 대개 아내들에게 잘해 준다고 할 때, 물질적인 것을 많이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내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남편의 사랑입니다. 그것도 크고 대단한 사랑이 아니라 세심하고 따뜻한 사랑입니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랑 말입니다. 남편들이 아내에게서 칭찬받고 존중 받을 때, 당당해 지고 멋있어 지듯이 아내들은 남편의 사랑 받을 때, 비로소 그 존재가 풍성해지고 아름다워 집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누가 그 득을 다 볼까요? 남편들입니다. 남편들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됩니다. 그래서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곧 자신을 사랑하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남편들이여! 자신을 위해서라도 아내들을 사랑합시다. 세심하고 따뜻한 사랑으로 우리 몸처럼 사랑해서 그들을 더 아름답고 온전한 우리의 신부로 만듭시다. 


결론 :  아내는 순종하고 남편은 사랑하라


교회가 주님께 하듯 하는 복종,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사랑. 이 두 가지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부부들에게 요구하시는 아내와 남편의 의무입니다. 이 세상이 믿지 않는 부부들에게 요구하는 것과는 종류도 다르고 수준도 다릅니다. 아내의 의무는 아내들이 보기에, 남편의 의무는 남편들이 보기에 불편하고 실천불가능해 보여질 지도 모릅니다. 고리타분한 옛날 방식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요. 그렇지만, 교회가 몸이고 예수님께서 그 교회의 머리이시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 한, 우리가 남편과 아내로서 그 관계 안에서 감당해야 할 의무도 변하지 않습니다. 남편은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시듯이 그렇게 아내를 사랑해야 하고, 아내는 교회가 주님께 순종하듯 그렇게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누가 더 유리하냐 불리하냐를 따지기 전에 이렇게 사는 것이 부부를 향한 우리 주님의 뜻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성도의 가정은 그냥 가정이 아닙니다. 성도의 가정은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한 몸’ 안에서 예수님과 교회의 풍성한 관계를 배우고 누리도록 디자인된 하나님의 신비한 작품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부부들이 얼마나 깨어져 있습니까? 이미 이 세상에는 같이 살아도 같이 사는 것이 아닌 부부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만약 이 세상이 가르치는 삶의 방식이 맞는 것이었다면 이 세상의 부부관계는 이렇게 깨지고 망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얼마든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내는 순종할 자격이 있고, 순종할 마음이 있을 때만 남편에게 순종할 수 있습니다. 남편을 찜쪄 먹으면서 살 수 있습니다. 또 남편은 아내가 사랑스러울 때만 사랑하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만 사랑하면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짜 행복도 맛 볼 수 없고, 가정을 통해 예수님과 교회가 나누는 관계를 맛보고 누릴 수도 없습니다. 


세상이 뭐라고 해도, 또 나의 생각이 어떻다고 해도, 부부가 만나 ‘한 사람’을 이루어 살게 된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순종과 사랑이라는 이 두 단어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는 지혜와 겸손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부부관계안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교회의 순종을 흉내낼 때, 하나님께서 부부라는 관계 안에 숨겨 놓으신 보석같은 행복을 찾아낼 수 있고 그러면서 이 시대를 구속하는 귀한 역할을 감당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의 가정이 우리의 순종과 사랑으로 ‘한 몸’처럼 세워져서 우리의 행복과 주님의 영광의 터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아내인 자신, 남편인 자신을 한 번 돌아봅시다. 남편으로서 나는 아내를 내 몸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아내인 나는 남편에게 주님께 하듯 순종하게 하소서. 
  2. 우리 부부 관계 안에 예수님과 교회 사이의 관계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부부관계를 통해서 그 풍성한 기쁨과 은혜를 경험하며 살게 하소서. 
  3. 우리 어르신들은 자녀들의 가정을 생각하시면서 우리 자녀들의 가정이 그렇게 되어져 가도록 기도해 주시고, 아울러 이 땅의 깨어지고 아파하는 가정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