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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10.04.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사도행전 13장)





설교일 : 2016년 10월 4일 화요일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은 개인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는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도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 기도라는 것도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께,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도 또한 말씀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도 사실 우리 마음에 있는 신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하나님을 믿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말씀이 빠지면 기독교는 더 이상 기독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목회자들이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교회 안에서는 하나님 말씀 자체에 대한 관심이 희미해 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설교에 대한 관심이 약해지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 좋은 설교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지고 있지만 하나님 말씀 그대로를 풀어 전달하는 것, 그리고 그 의미 그대로를 선포하는 것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실 아주 심각한 현상입니다. 이러다가는 기독교 신앙이 더 이상 기독교 신앙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그런 현상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사도행전 13장에서는 드디어 사도 바울이 교회의 파송을 받아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바울과 동역자들은 가는 곳마다 놀라운 일을 일으켰습니다. 바보라는 곳에서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엘루마라는 사람을 눈 멀게 했고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는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 전체가 복음을 들으러 회당으로 몰려오는 일도 있었고 그들 중에서 상당수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놀라운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일들은 모두 그들이 전했던 복음, 정확하게는 사도 바울의 설교를 중심에 놓고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에는 사도 바울이 회당에서 했던 상당히 긴 설교가 한 편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설교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큰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그렇다면 그 부흥을 일으킨 설교는 무엇에 대한 설교였고 또 어떤 설교였을까요? 우선 이 설교는 예수님에 대한 설교였습니다. 예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된 메시야이고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게 된다는 메시지를 담은 설교 였습니다. 바울은 그 이야기를 구약성경의 처음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일어났던 일들을 증거로 들어가면서 회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설교했습니다. 그러니까 안디옥에서 부흥을 일으켰던 바울의 설교는 그저 예수님을 중심으로 성경 전체를 주욱 나열하고, 또 근래에 일어났던 예수님과 관련된 사건들을 이야기고해 주는 것이 전부였고, 결국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결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설교는 재미있는 설교였을까요? 듣기 편안한 설교였을까요? 그 안에 예화가 있었고 우스갯 소리가 있었을까요?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이미 같이 읽으셨으니까 아시겠지만 이 설교에 재미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듣기에 편안하지 않습니다. 예화도 없었고, 웃음기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설교가 안디옥이라는 도시에 엄청난 부흥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성령충만해서 설교했으니까 그런 역사가 일어났다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바울의 설교에 그렇게 반응하고 또 예수를 믿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과 전혀 반대가 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똑같은 설교를 들었지만 힘있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동역자들을 핍박하고 자기 도시에서 내쫓아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났을까요? 그런 차이가 생겨난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모두가 바울에게서 같은 설교를 들었기 때문에 바울의 설교에 문제가 있을 리는 없습니다. 바울의 설교가 재미없고, 어렵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런 차이가 생겨나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 설교를 듣는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바울은 회당에서 설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이미 하나님을 알고 또 믿는 사람들, 이미 성경을 아는 사람들에게 설교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들 중 일부는 예수님을 믿고 바울을 따랐고, 나머지는 배척하고 바울을 내 몰았던 것입니다. 저는 이런 차이가 생겨난 이유는 각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기본적인 태도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믿은 사람들은 겸손하고 진지하게 편견 없이 바울의 설교를 들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성경 그대로를 전하고 있는데도, 심지어는 성령충만해서 전하고 있는데도 그 모든 내용들이 과연 성경과 일치하는가, 또 사실과 일치하는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듣기 보다는 바울의 설교가 자신들의 입장과 일치하는가 아닌가, 자기 유익에 부합하는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 복음을 믿게 되었을 때, 그것을 시기하면서 힘 있는 사람들을 선동해서 바울을 내쫓아 버렸겠지요. 

설교는 유익한 강연이나 재미 있는 입담이 아닙니다. 내 입장을 지지해 주는 이야기도 아니고 내 이익을 대변해 주는 메세지도 아닙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와 교훈, 그리고 은혜를 밝혀내는 것이며, 그래서 그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다른 것은 다 내려놓고 그런 입장에서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설교가 그 사람을 살립니다. 그래야 그 설교가 믿음이 되고, 그 설교가 능력이 됩니다. 


좋은 설교를 찾으시기 보다는 좋은 청중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말씀이 주는 은혜와 능력을 놓치지 않는 복된 청중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