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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11.22.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고린도후서 11-12장)

설교일 : 2016년 11월 22일 화요일





사람들이 항상 그럴 것이다라고 기대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다고 믿는 것이 있지요. 그러나 그런 것들 중에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들도 참 많습니다. 그런 것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수가 그렇게 하면 그게 옳은 것이다’라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소수가 선택한 것이라고 해서 항상 다수가 선택한 것보다 더 옳은 것은 아닌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을 선택한 숫자로 그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시면서 생명으로 이르는 길은 좁은 길인데, 그렇기 때문에 그 길로 가는 사람들이 적다고 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생각해 보면 정말 중요한 일에 있어서는 다수보다는 소수가 옳은 경우가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을 생각할 때, 사도 바울은 그저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핍박과 오해만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유대인이건, 아니면 이방인이건 말이지요. 그렇지만 사실 성경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바울을 제일 심각하게 오해한 사람들은 바로 교회의 성도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같은 사도이고 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었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복음을 듣는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 것들 중의 한 가지가 바로 교회에 재정적인 부담을 주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물론 바울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교회로부터 자기 생활에 필요한 것을 공급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그게 복음에 방해가 될까봐 그 권리를 포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도들과 복음 전도자들은 그것이 당연한 권리였기도 하거니와 교회로 부터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공급받지 않고서 그 일을 하는 것이 너무나 힘드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의 모두가 교회에서 생활비를 지원받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사람들을 보게 되면 아마도 우리는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사도 바울을 칭찬하고 인정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대다수가 그렇게 하는 것을 단지 몇 사람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것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됩니다. 그저 많은 사람이 선택했다는 이유로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맞는 것으로 판단하게 되고, 그 반대쪽을 선택한 사람들은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들이 틀리거나 혹은 그 사람들의 선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실제로 사도 바울이 받은 오해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서, 또 복음을 듣는 사람들을 위해서 더 어려운 길, 더 바른 길을 선택했지만 정작 그 사람들은 바울이 정식 사도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위축되어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후서를 기록한 아주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오해를 바로 잡기 위해서 였습니다. 만약 자신의 사도로서의 자격이 의심을 받는 경우, 자신이 전한 복음마저도 그 진리됨을 의심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이 경험했던 일을 생각해 보면서, 혹시 우리가 신앙적으로도 이런 실수를 범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나는 그저 어떤 선택을 한 사람들이 숫자가 적다는 이유로 그것을 그저 바르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고 또 그렇게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바른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도 그 길을 따르려고 있지 않은지 주의깊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생각만 한다고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언가를 판단할 때는 언제나 바른 기준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성경을 기준에 놓고서 모든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냥 내 생각이나,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으니까 하는 것들을 기준으로 해서 우리의 신앙이나 신앙과 관련된 일들을 평가하고 판단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을 보거나, 이 세상의 일들을 보거나, 혹은 우리 자신의 신앙을 볼 때나 우리는 언제나 성경을 중심에 놓고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경의 잣대로 재고, 성경의 렌즈를 통해서 말이지요. 그러기 위해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많은 수’ ‘대다수’가 가지는 매력입니다. 항상 많은 수의 속임수에 주의하면서 성경을 기준으로 사용하며 살아서 항상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까운 것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