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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6.12.02. 금요기도회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시편 23-1)




설교일 : 2016년 12월 2일 금요일

설교분문 : 시편 23편




우리가 너무 너무 만족스러울 때 사용하는 말들 중에 ‘더 이상 원이 없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현재상태로 너무나 충분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필요한 것이 없을 때, 우리는 이런 말로 자신의 만족감을 표현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분명히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너무 만족스러워서 ‘더 이상 원이 없다’고 이야기 했던 경험 말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충만한 경험이었습니까? 그 순간은 얼마나 행복한 순간이었습니까? 아마도 이게 바로 천국이지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이런 만족의 경험들은 많은 경우 계속해서 유지되지 못합니다. 마치 배가 많이 고프다가 배가 부르게 음식을 먹으면 그 때는 완전히 만족하지만 배가 꺼지고 나면 금새 또다시 배가 고파지고 불만스러워 지듯이 우리의 만족에 대한 우리의 경험 또한 그 만족이 경험될 때에 국한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오늘 시편 23편에서 다윗도 자신의 만족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만족을 미래형으로 표현합니다. 다윗은 “내게 부족함이 없다”가 아니라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더 이상 원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앞으로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고 그래서 자신에게는 앞으로도 원이 없는 상태가 계속될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이런 고백을 그것도 확신있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스스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것이 그가 자신은 미래에도 원이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믿는 이유였습니다.  


다윗도 목자였습니다. 자기 양 떼를 치는 목자였습니다. 들판으로 방목을 나갈 때면, 양 떼들을 지키느라 뜬 눈으로 밤을 세워야 했던 날이 많았습니다. 그가 사울 앞에서 말한 것처럼 양들이 맹수의 공격을 받을 때면 그 맹수와 들러 붙어서 목숨을 걸고 싸운 적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새끼 양을 물고 가는 곰을 공격해서 그 입에서 그 양을 구해낸 적도 있었습니다. 위험한 곳을 지나가야 할 때면, 자신이 가장 위험한 곳에 서서 양 떼가 그리로 다가오지 못하도록 했고, 양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꼴을 먹이고 불안해 하지 않으면서 쉬게 하려고 더 좋은 풀밭, 더 잔잔한 물가만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양들은 안전하고 평안하게 부족함이 없이 하루 하루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한 사람의 목자가 자기 양떼들을 위해서 제대로 헌신하면 양들이 얼마나 잘 먹고, 잘 살고 잘 자라는지, 그리고 얼마나 편안해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자신도 양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양이 아니라 하나님이 먹이시는 하나님의 양이었습니다. 만약 부족한 것 투성이인 한 사람도 자기 양떼들을 그렇게 잘 돌볼 수 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기 양떼들을 돌볼 때, 그 양떼에 속한 양들에게는 그 어떤 부족함도 생겨날 수 없을 것이 다윗이 도달한 결론이었습니다.그래서 그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완전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돌보시는 우리 인생에 부족함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우리가 진심으로 그렇게 대답하기는 참 어렵지만 그래도 가능한 답은 부족함이 있을 수 없다는 것 하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지금 이 고백을 그렇게 머리 속에서만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 여호와의 기르시는 양입니다. 지금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이렇게 시작한 내용이 2절부터 5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요. 우리가 시편 23편에 나오는 동사들을 모두 세어 보면 15개인데, 그 중에서 10개가 현재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다윗은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어 주시는 삶의 유익들을 지금도 누리며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다윗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십니다. 지금도 다윗을 쉴만한 물가에 눕게 하십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다윗의 지치고 시든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좋은 길로 책임지고 인도하십니다.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전하게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마치 자신이 예전에 사나운 짐승들이 지켜 보는 앞에서 양떼들에게 좋은 꼴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원수들 앞에서 상을 베풀어 주시고 다윗을 만족시켜 주십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계속해서 영광스럽게 해 주십니다. 모두 다 무엇 덕분입니까? 하나님께서 지금도 다윗의 목자가 되어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 모든 일들을 현재진행형, 매일 매일의 현실 속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신앙생활을 현재진행형이라고 표현한다면 아마도 오늘 더 많은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과거완료형이라고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많은 성도들이 은혜가 지나가 버린 후에야 은혜가 은혜인 줄 아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물론 평생 은혜가 은혜인 줄도 모르고 넘어가는 사람들도 정말 많기 때문에 이 정도만 되어도 괜찮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은혜가 주어질 당시에 그 은혜를 깨닫는 것 하고 나중에 깨닫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은혜가 주어지는 순간에 그것이 은혜 인 줄 아는 사람은 항상 은혜 가운데 살아갑니다. 현재의 만족과 기쁨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은혜를 은혜로 깨닫는 사람은 현재가 없는 삶을 삽니다. 적어도 이런 사람들은 현재가 얼마나 풍성하고 완전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담고 있는지 그것을 깨닫고 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현재는 항상 만족이 없는 궁핍한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 주셨던 잃어버린 양의 비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 비유는 잃어버린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려주는 비유이지만 우리가 이 비유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우리의 신앙과 삶을 위한 또다른 유익과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00마리의 양이 있었습니다. 99마리는 우리 안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한 마리가 대열에서 탈출했습니다. 그 양은 나도 한 번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보리라 마음 먹고 무리에서 이탈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자유와 풍요로움이 손에 쥐어쥘 줄 알았으니까요. 그렇지만, 그 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언제 들짐승이 공격해 올지 모르는 광야와 낭떠러지 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배를 불려줄 양식도 없었고 몸을 쉬게 해 줄 변변한 장소 하나 없었습니다. 고생과 배고픔, 그리고 두려움과 위험이 그가 얻을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여기까지만 생각하기로 하구요.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한 가지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양이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무리에서 이탈하고 자기 마음대로 가고 싶은 대로 갈 때, 이 양은 이제 더 이상 목자의 양이 아니게 되었을까요? 아니면 그래도 여전히 목자의 양이었을까요? 여전히 이 양은 목자의 양이었습니다. 이 양이 목자의 양이라는 사실은 단 한 순간도 바뀐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달라진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요? 달라진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양이 목자의 양이기를 더부했다는 것과 그것 때문에 양은 광야에 내던져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저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복과 은혜가 주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비유한다면, 평소에 전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나 언제나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같은 은혜를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죠. 그 증거가 무엇일까요? 모든 성도들이 시편 23편을 읽으면서 저마다 시편 23편의 은혜가 자신에게 주어지고 있다고 믿고 은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들의 목자이십니다. 단 한 순간도 이 사실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우리가 그 목자를 떠난다면,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간다면 그 때는 하나님께서 목자 되어주실 때, 내가 하나님의 양으로 살아갈 때 받고 또 누릴 수 있는 복과 은혜는 상당부분 놓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나마 그 광야에 있을 때도 여전히 자기를 지켜 주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조차도 전혀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양이면서도 광야의 두려움과 결핍을 고스란히 떠 안고서 매일 매일 불안한 삶을 사는 안타까운 모습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시편의 맨 앞에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이 지금 부족함이 없고 앞으로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지금 하나님께서 다윗의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윗이 그런 하나님의 양으로 살아가는 삶을 기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신앙은 아주 실제적이고 현실적이었습니다.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다윗은 매순간 순간을 하나님의 양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의 삶을 섭리하시고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되어주시는 복은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양으로 살아갈 때, 양이 자기 목자를 의지하고 신뢰하듯이 그렇게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따라갈 때, 그 때만 온전히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부족함이 없고, 또 앞으로도 부족함이 없을 그런 삶이 될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목자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그 목자의 양의 자리를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매일 매일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목자가 되어 주시는 복과 은혜 속에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삶이 은혜로 써내려져 가는 작은 시편 23편이 되고, 새로운 시편 23편이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