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에베소서 6장 18-20절
- 기도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올해가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나고 2월달이 되었습니다. 1월 한 달은 정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이렇게 후다닥 지나가 버리는 것 같습니다. 앞을 보시고요. 다시 한 번 올해의 신앙주제를 힘차게 외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기도하며 사는 성도! 기도로 서는 교회!’ 우리는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또 한 번 우리 기도생활의 회복을 영적인 목표로 삼았는데요. 사실 기도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다가 기도를 하려고 하면 굉장히 힘들고 무엇을 기도해야할지 조차 떠오르질 않습니다. 또 기도를 잘 하지 않던 분들은 기도하는 일 자체가 부담스럽고 때로는 귀찮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뭐 꼭 기도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지만, 우리가 몇가지 질문들을 던져 보면 성도는 기도를 하면서 살아야 하고 교회는 꼭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하지 않고서도 과연 정상적인 신앙생활이 가능할까요? 기도하지 않고 살아도 하나님을 믿는 맛을 알 수 있을까요? 기도하지 않아도 충분한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을까요? 기도하지 않고서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을까요? 기도하지 않는 성도가 죄를 이길 수 있을까요? 또 기도하지 않는 교회가 과연 건강하고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교회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기도하지 않고서 일을 해도 과연 그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있을까요?
물론 기도가 만능은 아닙니다. 기도만 하며 다 되는 것도 아니구요. 그렇지만 기도가 빠진 신앙생활, 그리고 기도하지 않는 교회가 정상적인 모습이 될 수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저는 분명히 보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러실 줄로 아는데요. 어떤 성도가 기도하며 살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일단은 눈빛이 다르고 얼굴 표정이 다릅니다. 몸에서 느껴지는 힘이 다르고 믿음생활을 하는 간절함과 풍성함이 다릅니다. 고난을 이기는 힘이 다르고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다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다릅니다. 기도하지 않는 성도, 기도하지 않는 교회가 기도하는 성도들, 기도하는 교회들이 누리는 은혜와 능력을 똑같이 누리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게 개인이건 교회이건 간에 만약 기도하지 않고 있다면 기도하기를 시작해야 하고, 기도가 약해져 있다면 기도를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그 어떤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있고 기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있더라도 그것을 이겨내고서 다시 기도하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말한 후에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라고 덧붙인 이유도 그래서 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기도와 모든 간구를 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성령님께 의지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도를 방해하는 수많은 방해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먹고 사는 일에 푹 빠져 있는 우리의 마음과 관심, 기도하지 않아도 그럭 저럭 살아지는 우리의 삶, 쉴틈 없이 바쁘고 피곤한 생활, 기도해도 별로 달라진 것 없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기도를 귀찮아 하고 식상하게 생각하는 마음 등등. 우리의 기도생활을 가로 막는 수없이 많은 이유들이 있고 우리는 사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그래서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는게 사는 것 같지 않아지고 믿는 게 믿는 것 같지 않아집니다. 마음의 기쁨과 평안은 깨지고 영적인 싸움에서 밀리고 또 밀리게 됩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도 기도의 싸움을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의지를 가지고 그런 장애물들을 극복해 내려고 애쓰지 않고는 기도할 수 없고 특히 계속해서 기도하며 사는 일은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래서 기도하라고 말하고 나서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라’고 덧붙였던 것입니다.
제가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살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들 중에서 쉽고 편하기만 한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들은 다 선한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선한 일들이기 때문에 사탄이 우리가 그 일을 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를 않기 때문에 그런 일들은 모두 쉽지가 않은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선한 일입니다. 기도할 때, 선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탄은 기도를 방해합니다. 마치 그것이 우리의 생각에서 나온 정당한 구실이나 되는 것처럼 우리를 속여서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런데요. 만약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편합니다. 전혀 귀찮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내 삶에, 내 주변에, 이 세상에 기도할 때 일어나는 선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리고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모든 생각들은 전부가 다 사탄의 유혹이고 속임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서 기도해야 하고, 기도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유혹이 있고 거짓말이 많아지고 강해질 수록 우리는 오히려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연초에 말씀드린 대로 올해는 가능한 한 우리가 함께 기도하는 자리와 시간을 좀 늘려 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 기도가 어려운 분들에게 기도를 연습하는 기회를 드리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기도의 모임이 있고 기도하자고 말씀드릴 때마다 절대로 ‘또 기도냐’ 하지 마시고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기도하는 자리에 함께 계셔 주십시오. 우리가 모여서 진정으로 주님을 부를 때, 주님은 분명히 우리의 기도를 힘있게 해 주실 것이고 또 우리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올해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모든 기도와 간구를 드리는 한 해가 되고, 깨어 기도하기 위해 애쓰고 힘쓰는 한 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II.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한 공부를 마쳤는데요. 이 전신갑주는 병사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용장비가 아니라 개인용 장비였습니다. 그 여섯가지를 하나 하나 생각하다 보면 머리에는 한 사람의 병사만 생각하게 됩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눠드린 그림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이 전신갑주의 모양만 생각하다 보면 우리가 싸우는 영적인 싸움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싸움을 우리 개개인이 우리 개인에게 달려드는 적과 싸워 이기기만 하면 되는 나 개인의 싸움으로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들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그렇게만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나만 잘 믿으면 된다’는 말을 다 들어 보셨지요? 여러분은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이 말이 맞는 말 같은가요? 물론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모습 때문에 자신의 신앙이 심각하게 지장을 받을 때는 이런 생각이 도움이 되고 약간의 유익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일정부분은 맞는 부분도 있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의 신앙생활 전체를 이렇게 이해하거나 그렇게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비록 전신갑주는 개인용 장비가 맞지만, 그렇게 갖춰 입고서 싸우는 우리의 싸움은 내 개인의 아니라 함께 힘을 합쳐서 싸워야 하는 교회 전체의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우리를 약하게 하고 싸움에서 지게 만드는 주범이 되기 때문입니다.
(화면을 띄운다)
잠깐 화면을 좀 봐 주실까요? 이게 무슨 그림일까요? 이것은 ‘거북이 대형’이라고 불리는 로마군대의 아주 유명한 진법인데요. 로마군이 가는 곳마다 그렇게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대형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진을 짜놓고 사람은 바깥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다가 오는 적들이 있으면 속에 숨기고 있었던 긴 창으로 공격하고, 더 가까이 접근한 적들은 칼로 방어하면서 전진했다고 합니다. 그야 말로 전혀 틈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지요. 왜 로마군사의 방패가 아래 위로 길죽한 사각형이었는지 알 수 있겠지요? 바로 이 거북이 대형을 만들기 위해서 였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어와 공격이 가능한 이 대형을 만들려면 그런 모양의 방패가 꼭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군의 방패는 필요이상으로 크고 긴 모양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 늘 이렇게 함께 싸웠기 때문입니다.
사실 바울이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한 말씀을 전할 때도 그의 머리 속에 있는 그림은 바로 이 그림이었습니다. 그는 성도 각자가 각개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모두 다 로마 군대가 싸움을 하는 모습을 생각할 때는 이 그림을 떠올렸고, 이 그림은 곧 승리를 상징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영적인 싸움을 하는 성도들, 그리고 교회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싸울 때, 교회는 가장 완벽하게 방어와 공격을 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성도도 교회도 이기는 전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나 개인주의적인 문화에 젖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개인의 자유와 독립성은 마치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처럼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성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를 생각할 때도 마치 그저 믿는 사람들이 편의에 의해서 모여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 그런 곳 쯤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것 때문에 교회는 교회대로 성도 개인은 성도 개인대로 영적인 싸움에서 자기를 보호하고 또 사탄의 공격을 무찌를 능력을 대부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원래 교회와 성도의 능력이란 로마군대의 거북이 대형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지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싸워주며 서로를 위한 방패가 되어줄 때, 제대로 드러나게 되는 것인데, 오늘날 교회 안에는 개인 밖에 남지 않았으니까요.
그렇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다시 그 능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그 해답은 18절 마지막 부분에 있는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는 바울의 권면 속에 들어 있습니다. 성도가 다른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성도가 다른 지체들과 ‘함께’ 싸우는 방법이고 그들을 ‘위해서’ 싸워주는 방법입니다. 우선 성도가 다른 지체를 위해서 감당하는 진실된 기도 속에는 한 명 한 명의 성도들을 하나로 묶어 견고한 진으로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교회 공동체 안에 숨겨 놓으신 능력과 은혜를 바깥으로 끄집어 내는 힘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이 서로의 연약함을 붙들고 서로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할 때, 없던 능력도 생겨나고 질 수 밖에 없는 싸움도 이기게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뿐만 아닙니다. 기도는 또한 함포사격입니다. 이런 기도는 가까이 있을 때뿐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도 서로의 승리를 돕는 가장 강력한 지원사격이 됩니다. 화요일날 임성현 목사님이 남아공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잠깐 교회에 들리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지면서 제 두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꼭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기로 해요.”라고 말이지요. 그 말씀이 저의 가슴에 와서 깊이 박혔습니다. 그것은 일상적이고 의례적인 인삿말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 속에서 저는 선교사님의 간절한 마음과 믿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선교사님은 저에게 다른 부탁 다 놓아두고 그 부탁 하나만 하시고서 가신 것일까요? 그 분은 제가 여기서 자신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의 능력이 남아공에 있는 자신의 사역에 그대로 나타나게 될 것을 믿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모든 현실적인 부탁을 다 놓아두고 그저 기도 부탁만 남겨 놓고 떠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바울도 그렇게 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에베소의 성도들 보다 자신이 훨씬 더 성숙하고 또 사실 기도의 능력면에 있어서도 훨씬 더 뛰어났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성도가 성도를 위해서 드리는 기도가 가지고 있는 그 엄청난 능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성도들을 하나로 묶습니다. 기도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똑같은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것이 기도가 가지는 놀라운 힘이며 우리가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III. 결론
교회가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단지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함께 기도하되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의 짐을 져 주는 그런 모임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함께 싸우고 함께 이기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혼자 싸워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이기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을 지켜내기도 힘듭니다. 절대로 그저 그러려니 하지 마십시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체념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라고 우리를 교회 안으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될 수 있는대로 많은 성도들과 여러분 자신의 신앙적인 싸움에 대해서, 그 어려움과 아픔에 대해서 진솔하게 나눠 보시기 바랍니다. 그저 괜찮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지 마시구요. 사실 평생을 한 교회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면서 자신의 깊은 속내나 아픔 한 번 드러내지 않고서 함께 지낸다면 그것만큼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될 수 있는대로 많은 분들에게 기도의 제목을 물으시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겨야 그 분들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 분들이 이겨야 여러분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기도의 교제가 깊어질 수록 우리는 더욱 더 견고한 진 안에 속한 강한 군사가 되어 더 많이 승리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그림을 봐 주시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저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 속에 있는 교회의 모습이고 성도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의 끈으로 온전히 하나되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싸우고 함께 이기는 사람들! 그것이 교회이고 교회의 영광입니다. 언제나 저 그림을 마음에 품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의 짐을 져주는 우리들, 그래서 함께 싸우고 함께 이기는 우리 광현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함께 서로를 위해서 기도로 싸우고 함께 기도로 이기는 기도의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 우리 안에 풍성한 기도의 교제가 회복되게 하소서. 그래서 기도의 능력이 풍성한 신앙생활, 기도의 증거가 풍성한 교회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