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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7.02.10. 금요기도회 - 온유한 자의 복3(시편 2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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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분문 : 시편 25편 14-22절




계속해서 시편 25편을 통해서 온유한 자가 누리는 복에 대해서 묵상하고 있는데요. 온유한 사람이 복이 있는 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가난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바라고 하나님의 은혜만 구하니까 하나님이 친히 그 사람과 함께 해 주십니다.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고 물을 얻듯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만 생각하면 탐탁치 않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의 삶을 채워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는 오히려 우리 마음에서 온유함이 사라져 가는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 속에도 온유한 자가 누리는 아주 특별한 복들이 설명되어 있는데요. 여러분의 삶이 오늘 말씀이 온유한 자에게 약속해 주시는 복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이 온유한 자에게 약속하는 첫번째 복은 바로 ‘하나님의 친밀함’이 그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사람을 아주 특별히 가까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특별한 친밀한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 하는 것보다 더 나은 복이 또 있을까요? 하나님과 정말 살가운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되는 것,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가까이 느끼고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에서 감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감정이 곧 미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믿는 바가 확실하다면 그 다음에 감정은 꼭 필요하고 또 감정은 따라올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결국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인데 그런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어찌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될 것입니다. 마음이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을 친밀하게 느낍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생각하면 좋고 하나님만 생각하면 기쁘고 행복해 지는 그런 삶을 살게 되는데 이것이 마음이 온유한 사람이 누리는 가장 핵심적인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친밀한 사랑을 얼마나 가까이 그리고 진하고 구체적으로 누리며 사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가난한가 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가난할수록 그만큼 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가슴 속에 깊이 그리고 진하게 와 닿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꼭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완전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만이 우리의 영혼을 만족하게 해주고 또 지친 우리 영혼을 평안히 쉬게 해 줍니다. 그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잃어버리고 빼앗겨 버렸던 우리 자신의 존재와 인생의 진짜 가치를 되찾게 되고, 정말 사는 것 같이 사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런 친밀한 사랑은 우리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장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 죄를 용서하신 구원자로만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구원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대신 내어 주심으로써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아까워하시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심으로써 이 세상에 예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또 모든 율법을 이루심으로써 우리가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도록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대신 매맞으셨고, 대신 부끄러움을 당하기도 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인도자가 되어 주시고 상담자가 되어 주시며, 필요한 모든 것의 공급자가 되어 주시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까지 헤아리시며 우리를 위해 하늘에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이렇게 세심하고 살가운 사랑으로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런 친밀한 사랑은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가난해져 있는 사람만이 제대로 알고 또 느낄 수 있는 복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 복을 복이라고 알아볼 수 도 없고 그래서 그것을 구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우리가 배가 고플 때는 별 것 아닌 음식들도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먹으면서 감탄을 연발하고 더 없느냐고 더 찾게 되지요. 그렇지만 배가 부르면 어떻습니까? 맛있는 음식도 전혀 맛있지가 않습니다. 식욕이 당기지를 않으니까요. 우리 영혼도 그렇습니다. 이미 그 마음이 다른 것으로 꽉 채워져 있으면 하나님의 친밀하고 각별한 사랑을 원하는 욕구가 생기지를 않습니다. 자기 자신으로 충분하고 자기가 가진 것으로 이미 충분하니까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하나님을 향한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의 살갑고 풍성한 사랑을 실제로 누리고 느끼며 살게 되는 것이고, 이렇게 해서 온유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친밀함을 독차지 하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알려주는 온유한 사람의 두 번째 복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언약을 ‘보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은 그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은혜스러운 문자가 아닙니다. 단순히 믿고 기대하는 어떤 것도 아니지요. 마음이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을 봅니다. 눈 앞에 있는 이 컵처럼 하나님의 언약을 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온유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약속은 막연한 위로나 기대가 아니라 이미 눈 앞의 실체와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얼마나 놀라운 복입니까?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왜 낙심합니까? 왜 좌절하고 믿음을 잃어버리며, 왜 포기하고 뒤로 물러섭니까? 왜 작은 시험 앞에서도 그렇게 무기력해지지요? 그 이유는 우리가 그런 상황 속에서 붙들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때, 하나님의 약속이 눈 앞의 현실처럼 선명하게 보여진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게 될 것이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고 믿음을 잃어버리는 자리로 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 손에는 이미 하나님이 주신 답이 들려져 있으니까요.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도 약속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습니다. 마치 새 잡이 그물에 발이 걸린 새처럼 옴짝달싹 할 수 없었지요. 그런데, 그 때 하나님의 약속이 보입니다. 그 약속이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 보다도 더 분명한 사실이 되어 눈 앞에 보여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약속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건져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간절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찾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진짜로 보여주신 약속대로 다윗의 발을 그물에서 건져 주셨을까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시편 25편이 성경에 기록된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난 중에 부르는 소망의 노래가 된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같은 신앙 안에 있다고 모두가 다 같은 은혜를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은혜와 복들은 우리 마음의 상태와 직결되어 있는데, 우리는 저마다 하나님 앞에서의 마음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고 누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가난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가난함이 다 다르니 받고 누리며 사는 은혜와 복도 다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고 보면요. 사실 때로는 ‘가난한 마음’이라는 말이 지겨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래서 우리가 이 가난함을 멀리하면 그 때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친밀한 하나님의 사랑과 세심한 은혜도 함께 멀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의 영혼은 시들게 되고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가난해지고 궁핍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이 가난한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 마음이 가난해야 우리가 주님을 찾게 되고, 우리가 주님을 찾을 때 주님은 주님의 완전한 은혜로 우리의 모든 가난함과 부족함에 대한 답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친밀한 사랑, 그 각별하고 살가운 사랑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가난한 마음은 편안한 마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가난한 것은 정말 복된 것입니다. 그 가난함이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삶과 영혼을 채우는 통로가 되고 그릇이 되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래도 온유함을 잃어버리거나 마음의 가난함을 멀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보게 해 주시고, 그 사람이 그 약속을 붙들고 기도할 때 그 약속대로 그 발을 그물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가난해진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은혜에 의지하면서 예수님처럼 온유한 마음을 지닌 사람으로 살아서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하나님의 친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서 가장 복된 온유한 마음을 위해서 기도하구요. 
  2. 나를 하나님의 살가운 사랑을 느끼고 누리며 살게 하시고, 변함 없는 구원의 약속을 보며 내 발을 그물에서 건지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