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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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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6. 금요기도회 -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사도행전 64) 본문 : 사도행전 10장 44-48절 우리는 사도행전을 함께 살펴보기 시작하면서 한 가지 기도를 계속해서 해 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충만을 허락해 달라기는 기도였습니다. 물론 성령님을 언제 보내주시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 때를 기다리면서 계속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성령님께서 우리 위에 물붓듯이 부어지며, 그 분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거하신다는 것! 세상에 이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무언가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우리 안에 부어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2014.05.30 금요기도회 -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사도행전 63) 본문 : 사도행전 10장 44-48절 처음 사도행전을 시작할 때, 학자들은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부른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성령행전이라는 이름은 사도행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별명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신다는 약속과 함께 시작되고, 그 약속이 성취되면서 부터 성령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놀라운 역사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 사람들이 한 역할이 정말 중요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대한 주도권은 항상 성령님께서 쥐고 계셨습니다. 성령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변화시키시고 양육하셨으며 거기 필요한 사람들에게 은사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제대로 읽으려면 맨 앞에 1장 8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약속을 놓고 그것이 ..
2014.04.04. 금요기도회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사도행전 56) 본문 : 사도행전 10장 34-48절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이것이 유대인 어부이며 사도였던 베드로가 로마군 장교인 고넬료를 만나고 나서 입을 열어 처음으로 했던 고백입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얻은 하나님에 대한 참으로 귀한 깨달음이지만 사실 복음이 우리들에게도 복음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하나님의 그러한 성품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해서 복음을 믿을 수 있었을까요? 저 멀리 유대 땅에서 성취되었던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우리를 위한 구원의 소식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외모, 그러니까 겉으로 보여지는 조건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
2014.03.28. 금요기도회 - 참으로 하나님은(사도행전 55) 본문 : 사도행전 10장 23-35절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닌데, 어떤 경우에는 그 쉬운 만남이 너무 너무 어렵거나 혹은 불가능해 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와 네팔 처럼 사는 곳의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어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만나기가 어렵거나 또 현대와 조선시대처럼 살아가는 시대가 다른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형성되는 일이 굉장히 힘들거나 아얘 불가능해 지는데,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는 곳도 비슷하고 사는 시대도 비슷한데 전혀 참된 만남과 교제가 불가능해 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서로 간의 적대감이나 편견, 그리고 고정관념이 그런 만남과 관계를 가로 막는 장벽이 되는데, 이것은 때로 그 어떤 장애물 보다도 훨..
2014.03.14. 금요기도회 -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사도행전 53) 본문 : 사도행전 9장 36-43절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또 우리 주변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저마다 모두 다릅니다. 의미가 다르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사람들을 생각할 때, 우리가 느끼는 무게가 모두 다르다는 뜻이고 그래서 그들을 다 똑같이 대하지 않는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들 사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생각하실 때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물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사람들을 똑같은 의미, 똑같은 무게를 가지고 바라보시고 또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의미의 무게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대하시는 태도 또한 달라집니다. 그렇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