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 마태복음 7장 1-17절
우리는모두 교회가 아무런 문제와 갈등이 없는 완벽한 곳이되기를 소원합니다.그렇지만,교회에다니는 사람들도 부족한 사람들이고,그속에 아직도 악한 구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고 보면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상처받고 실망하는 일은 피할수 없는 것 같습니다.그런일들이 생겨날 때마다 가장 많이 해 주고 또 듣는이야기가 있다면 "사람을보고 교회에 다니지 말라"는말일 것입니다.신앙이라는것이 결국은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이 말은 정말 옳은 말이고 그 문제에 대한 정확한 답일것입니다.그렇지만,우리가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교회 안,그러니까사람들 사이이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하기가 정말 어려운말이기도 합니다.세상에누구라서 다른 사람들의 모습 부정적인 모습에 전혀흔들리지 않을 수 있고,또실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이렇게하려면 아얘 나 밖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완전히무관심하든지 아니면 정말 거의 완전에 가깝게 성숙해서다른 사람들의 부족함과 악함을 정확하게 보고 느끼면서도그것 때문에 전혀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는 수준에이르러야 할 것입니다.그렇지만,남에게완전히 무관심한 것은 성도에게는 결코 바람직한모습이라고 할 수 없고,그런수준에 이른다는 것은 오를 수 없는 산 같이 느껴집니다.그런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들 때문에갈등하고 또 상처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는현실적인 문제와 "사람을보고 신앙생활을 하면 안된다"는정답 사이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보고 교회에 다니지 말라"는말은 위의 경우처럼 내가 다른 사람을 볼 때 뿐만아니라,내가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있습니다.위에서말씀드린 것처럼 신앙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해야합니다.그분께서 보시도록,그분이 어떻게 보실까를 염두에 두고서 말입니다.그런데,막상우리는 그 신앙생활을 사람들 사이에서,그들의눈길을 받으면서 합니다.사람은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그럴 듯하게 보이기를 원하고,또멋있게 보이기를 원합니다.그사람들의 우러름과 인정을 받고 싶어합니다.바로이것 때문에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이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게 되고,이것이과도하게 되면 신앙생활의 많은 부분이 "그사람들을 보고 하는 일"이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그리고,위의경우보다 이 경우가 신앙에 있어서는 훨씬 더 심각한문제를 만들어 냅니다.그것은결국 신앙을 사람의 일로 만들어 버려서 신앙을 신앙됨을해치기 때문입니다.
오늘본문에서 주님은 "사람에게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고말씀하시면서 산상수훈을 이어가십니다.신앙생활을행함이라는 기준에서 표현한다면 "의를행하는 것"이라고할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옳다고 여기시는 방향으로 가면서,하나님께서옳다고 여기시는 일들을 행하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기때문입니다.그런데,여기에한 가지,그런신앙생활이 참된 신앙생활이 되기 위해서 덧붙여야할 필수조건이 하나 있습니다.그것은바로 "하나님앞에서"라는말입니다.그러니까,종합을해 보면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앞에서 하나님이 옳다고 하시는 방향으로 가면서,옳다고하시는 일들을 하는 것"이라고할 수 있습니다.오늘우리가 읽은 본문 속에는 이 의에 대한 세가지 내용이포함되어 있습니다.구제,기도,그리고금식이 그것입니다.이세 가지는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경건한삶"이라고하면 떠 올리는 가장 중요한 세가지 였습니다.그러니까그 당시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세 가지가 신앙을신앙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일들이라고 이해하고있었던 셈입니다.주님도그런 것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으셨습니다.그러나,주님은그들이 잊고 있었던 것,그세가지를 행하는 것 자체보다도 더 중요한 것 한가지를일깨워 주셨습니다.그것은바로 그 모든 일들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일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그리고그 이유를 그렇게 되면 "하늘에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말씀하셨습니다.우리는여기서도 예수님의 신앙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신앙을가져야 하는 이유,신앙생활을제대로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천국에 있습니다.그나라의 상에 있습니다.너무나당연합니다.우리의신앙이 하나님을 향하는 일이라면,그일에 대한 상은 땅이 아니라 하늘에서 하나님께서주시는 것입니다.때로는그것이 땅에서 주어질 때도 있지만,그출처는 분명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서 부터오는 것입니다.그렇게보면 "하늘에계신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한다"는주님의 말씀은 결국 신앙이 아무런 열매가 없는 일이되어 버리고 만다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물론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는 사람들에게도상은 있습니다.그들의상은 그들이 그렇게 원하던 것이 될 것입니다.사람들의인정과 그로 인한 자기영광 말입니다.그러나,그건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하늘의상이 아닙니다.그저사람들 앞에서 행한 일로 인해 사람들이 주는 것에불과합니다.
주님은사람들을 앞에서 의를 행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한 가지말씀을 세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반복한다는것은 그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그렇게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은밀한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라는말씀입니다.주님께서그렇게 중요하다고 하시니 우리는 이 말씀에 집중해야합니다.여기서예수님은 하나님을 "은밀한중에 보시는 분"이라고우리에게 소개합니다.거꾸로뒤집어 보면 "은밀하지않은 것은 보지 못하시는 분"이라는뜻입니다.그런데,하나님이그런 분이십니까?드러내놓고,보이기위해서 하는 일은 보지 못하시는 분이십니까?그렇지않습니다.하나님은보지 못하는 것이 없으신 분이십니다.그러면왜 예수님은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그런아버지로 소개하셨을까요?그것은우리가 드러내기 위해서 하는 일들은,심지어구제와 기도와 금식이라는 가장 경건한 일일지라도하나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전혀 의미없고 가치없는일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그러니그 분이 그런 행동에 대해서 갚아주시고 상을 주실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하는 모든 일들에는 두 가지 중의 한 가지 상만이 있을뿐입니다.우리는사람들이 주는 상이든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시는상이든지 둘 중의 한 가지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사람들이주는 상을 바란다면 굳이 은밀히 할 필요가 없습니다.구제할때에 나팔을 불어도 좋고,기도할때에 거리 어귀에 서서 손을 들고 큰 소리로 해도좋습니다.금식을할 때에 일부러 얼굴을 어둡게 하면서 "지금은금식중”이라는 표지판을 내 걸어도 좋습니다.그러나하나님이 주시는 상과 갚아주심을 바란다면 결코 그렇게해서는 안됩니다.
무슨방법을 써서라도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오른손이구제할 때에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하며,거리가아니라 골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잠그고 기도해야 하고,금식을할 때는 오히려 더 말끔하게 차려입고,남들앞에서는 즐거운 표정을 지어야 합니다.그렇게해서 그 모든 일들이 나와 하나님만 아시는 일이 되도록해야만 합니다.우리는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많은관중 앞에서 그들의 곧 사라져 버리고 말 박수를기대하면서 경주하든지,아니면단 한 분의 관중 앞에서 그 분의 영원한 박수를 기대하면경주하든지 말입니다.우리의상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주어질 뿐입니다.그것이우리가 받을 상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이기때문입니다.
돋보기로먹지를 태우는 놀이,아마어린 시절에 한 번쯤은 다 해 보셨을 것입니다.너무신기해서 하고 또 하고 하다가 태우면 안되는 것까지태워먹어서 숨기느라고 곤욕을 치른 적도 있으셨을것입니다.돋보기로종이를 태우려면 한 가지를 잘 해야 합니다.바로촛점을 잡는 일입니다.촛점이정확하게 잡혔을 때,종이는순간적으로 확 타오르게 됩니다.촛점이잘 잡혀야만 불을 붙일만한 열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우리가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 말씀들은 모두 다 마태복음에속한 말씀들입니다.이마태복음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하나의 초점을 중심으로하는 네개의 원의 모양으로 그릴 수 있습니다.가장겉에 있는 큰 원은 마태복음 전체이구요,두번째원은 산상수훈입니다. 오늘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세가지 경건에 대한 말씀이세번째 원이고,기도에대한 가르침이 가장 안쪽에 있는 네번째 원입니다.그리고,마지막으로초점에는 우리가 주기도문이라고 부르는 "주님이가르쳐 주신 기도"가자리잡고 있습니다.그러니까마태복음은 앞에서 부터 주욱 쓰여진 책이 아니라주기도문을 초점에 놓고 앞뒤로 퍼져나가면서 쓰여진책인 셈입니다.마태복음의이런 모양은 우리 신앙에 대해서 큰 그림을 보게 합니다.우리는하나 하나의 신앙적인 덕목들을 실천해 나가면,그삶이 온전한 삶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성경이우리의 신앙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은 이런 우리의생각과는 조금 다릅니다.조금전에 말씀드린 마태복음의 모습 자체가 우리 신앙의원리에 대한 큰 원리를 보여줍니다.신앙의원리는 우리가 돋보기로 종이를 태울 때 적용되는원리와 꼭 같습니다.신앙이라는것이 우리의 삶 전체의 일이 되고,삶전체에 불을 붙이는 능력있고 온전한 것이 되게 하려면초점을 정확하게 잘 잡아야 합니다.그초점이 바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우리가이 기도를 중심으로 신앙생활하고 우리 삶에서 이기도가 온전히 회복되면 우리의 신앙은 우리 삶 전체를불붙게 할만큼 힘있는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그리고,그신앙은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이 될 수있습니다.
하나님나라 백성의 삶의 중심에는 경건이 있습니다.그리고그 경건의 중심에는 기도가 있습니다.오늘본문을 보면 주님은 기도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는 중에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구하기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아시느니라"이말씀은 참 은혜로운 말씀이기도 하지만,우리를참으로 의아하게 만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우리가기도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다아신다면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합니까?이미다 아시는데 기도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흔히들하나님은 우리 입으로 우리의 필요를 말씀드리는 것을좋아하기 때문에 기도해야한다고 설명합니다.그런데,이게그럴 듯한 설명이기는 하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있습니다.과연하나님이 그런,어찌보면유치한 만족을 누리시려고 우리에게 기도해야 한다고그렇게 강조하셨을까요?저는아니라고 생각합니다.기도는하나님의 만족이 아니라 우리의 부족함 때문에 꼭필요한 것입니다.우리가기도를 왜 합니까?근본적으로본다면 우리가 무능하고 무지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기도입니다.꼭필요한 것이 있지만 우리 힘으로는 얻지 못합니다.꼭해결해야 하지만 우리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그래서,기도하는것입니다.그렇게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요청할 때에 우리는 우리자신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꼭 필요한 연약하고 무능한존재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그렇게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보게 되고 겸손해 지는 것입니다.
또우리는 어떤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기도합니다.그러나그렇게 하면서도 사실은 그게 정말 그렇게 필요한지어떤지,다른더 좋은 것이 있는지 우리는 정확히 잘 모릅니다.마치직장을 위해서 기도하다가 목회의 길로 접어든 저처럼말입니다.그래서,기도란지금 내가 느끼는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라기 보다는,나도잘 모르는 나의 진짜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기도하는것입니다.생각해보십시오.만약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우리 삶이정말로 아름답고 온전해질까요?그렇지않습니다.우리는올바른 기도만 하지 않습니다.욕심과잘못된 판단이 느끼는 필요를 위해서도 기도합니다.그래서,그런것까지 다 들어주신다면 우리 삶은 오히려 기도응답때문에 심각하게 망가져 버릴 것입니다.그래서우리는 처음에 기도하러 갈 때는 내 필요로 부터 출발할수 있고 또 그래야 하지만,기도하는중에 내가 원하는 응답이 아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것을 응답으로 듣고 돌아와야 합니다.적어도그렇게 응답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돌아올 수있어야 합니다.그게기도의 진짜 유익이고 또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것입니다.
또한 가지 기도란 우리가 느끼는 필요를 하나님께 말씀드리는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하면서 우리 자신이 누군인지,나는지금 신앙적으로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기도에관한 아주 명확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그것은그 사람의 기도가 그 사람의 신앙의 삶의 주된 관심사와목표의 정직한 표현이라는 것입니다.우리는우리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을 기도로 옮기기 마련이기때문입니다.가만히여러분의 기도를 생각해 보십시오.여러분은주로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십니까?여러분의기도의 중심에는 무엇이 자리잡고 있습니까?그것이바로 여러분 자신이며,여러분의신앙의 본모습입니다.아무리겉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골방에서드리는 우리의 기도가 진실로 그렇지 않다면 결국은신앙도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왜많은 성도들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도하면서도영적으로,그리고인격적으로 성숙하는 것이 그렇게 더딥니까?저는그 사람의 기도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그것은그 오랜 시간 자신의 영혼을 살피거나 하나님과 대화하며그 분께 설복당하기 보다는 그저 자신의 느껴지는필요를 관철시키고 원하는 것들을 얻기 위해서 주로기도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겠습니까?그런기도는 결코 우리를 참된 경건에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우리를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되돌려 놓지 못합니다.우리의마음과 생각을 주님의 마음과 생각에 가까워지게 하지못하기 때문입니다.우리는기도하면서 나 자신의 본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마음과생각을 향해 변화해 가야 합니다.그것을위해서 기도해야 하고,기도를하면서 그런 경험을 해야 합니다.그것이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요구하신 가장 중요한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기도가이렇게 중요하기에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경건의 중심이기도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그리고"너희는이렇게 기도하라"고하시면서 0조목조목 그 기도의 초점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바로이 모범을 따라 기도할 때에,그의기도는 참된 경건의 중심이 될 수 있고,그의경건은 그의 삶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기에 충분해지기때문입니다.먼저이 기도는 하나님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되는데,예수님은우리에게 하나님을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로부르며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회원여러분은 기도드릴 때,하나님을누구라고 생각하면서 기도하십니까?그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그분은 우리의 진짜 필요를 속속들이 아십니다.그런데,그게전부가 아닙니다.바로그 분이 지극히 선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아버지이십니다.그래서우리는 그 분으로부터 가장 선하고 좋은 것을 기대하며기도해야 합니다.때로는기도의 응답이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주어진다고하더라도 그것이 그런 아버지께서 나에게 허락하신최선의 것임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우리가"하나님아버지"라고부를 때,그부름 속에는 이런 기대와 신뢰의 고백이 담겨져 있어야합니다.우리의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항상 그렇게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주기도문이라고 부르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크게 둘로 나누어 집니다.반쪽은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부분이고 다른 반쪽은우리의 필요에 대한 부분입니다.어디서많이 본 듯한 모습 아닙니까?그렇죠.십계명과비슷합니다.그래서어찌보면 이 기도는 십계명을 기도로 옮겨놓은 것이라고할 수 있습니다.예전의명령이 이제는 기도가 된 것입니다.이것은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살아야하지만,그것은우리의 힘과 의로움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겸손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만 가능한일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두 가지를 다시 세분하면 하나님에 대한 것 세 가지,우리자신의 필요에 대한 것 세가지 이렇게 여섯가지가됩니다.처음세 가지는 우리의 필요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이것은성도의 기도의 우선순위는 자신의 필요가 아니라하나님의 영광과 그 분의 뜻에 관한 것이어야 함을알려줍니다.예수님은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영광과 그 분의 뜻이 이 땅을가득 채우며,그분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하나님의영광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이 세상에있어야 하는 목적입니다.그리고그 모든 것들은 그 분의 영광 안에서만 온전하며 또스스로도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우리가왜 하나님의 영광을 삶의 목적으로 삼아서 살아야합니까?그것이모든 것을 제 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는,그래서가장 아름답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영광은 모든 것의 첫 단추입니다.그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나머지 단추 또한 자기 자리를잃어버리고 자기 자리가 아닌 맞지 않는 이상한 자리에끼워져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그래서,하나님의영광을 위한 기도는 그 분을 위한 기도인 동시에 우리자신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또이 땅위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합니다.모든인간의 문제란 바로 그 분의 뜻에서 어긋나있기 때문에생겨나는 일들이고 그 분의 온전한 다스리심만이 모든문제의 해답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지금이 땅 위에서는 그 회복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없습니다.사람들은온 나라가 복음화되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천국과비슷한 나라가 될 줄로 생각합니다.그러나,그렇지않습니다.모두가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땅이 하늘나라가 될 수는 없습니다.우리가여기 땅 위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한 우리는 여전히죄성을 가진 인간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죄는 이 땅이 하늘나라를 닮아가는 것을 계속해서방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래서우리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서기도하며,그렇게되게 하려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지만 동시에그 나라가,새하늘과 새 땅이 이 땅위에 속히 임하도록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마라나타를외치며 말입니다.
그다음에는 인간의 필요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그세 가지 중의 첫번째가 바로 "일용할양식"을위한 기도입니다. 우리가육체를 입고 살아가는 한 우리는 우리의 육체적 필요를채워주는 것들의 도움을 입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주님도우리가 그런 줄 알고 계십니다.그리고,그러한필요를 무시하시지 않으십니다.그분이 육체인 우리들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그래서,주님은무엇보다도 먼저 그 필요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신것입니다.그러나,그분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과 우리가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많이 다릅니다.그분이 우리들에게 너희들의 구체적인 필요를 위해기도하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은 놀랍게도 "일용할양식"을위한 것이 전부입니다.주님의이 말씀은 우리가 밥만 먹으면 벌거벗고 살고,한데서 잠을 자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여기서"일용할양식"이란 삶을 위한 최소한의 것을 의미합니다.그러면서도동시에 전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아무리모든 것이 다 없어져도 일용할 양식만큼은 꼭 필요합니다.일용할양식이 없으면 우리는 생명을 잃게 됩니다.그래서,생명을위해서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되고,또생명을 위한 전부가 됩니다.그러나,이것은최소한의 것이기도 합니다.우리가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일용할 양식이기 때문입니다.주님께서"일용할양식"을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그 이외의 '더많은 것,남는것'을위한 기도는 우리의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런기도는 결국 우리를 더 탐욕스럽고 물질적이게 만들기때문입니다.그래서"일용할양식"을위한 기도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알게 해 줍니다.우리에게정말 필요한 것이 사실은 얼마나 적은가 하는 것과그에 비해 우리의 욕심은 또 얼마나 크고 부풀려져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우리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처럼 일용할 양식을구하고,그일용할 양식을 얻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다면 우리삶의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겠습니까?남을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수많은 일들,우리가더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그리고하나님께 더 온전히 헌신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우리가일용할 양식을 얻고 그것으로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에생겨나는 일들이 아닙니까?그래서,우리는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그것만은빼먹지 말고 꼭 주시고,그것만으로도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또,일용할양식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생명이바로 그 "일용할양식"에매달려 있는 작고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우리들의고백이기도 합니다.그래서이 기도는 꼭 필요합니다.우리가누구인지를 확인하고,우리에게꼭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또욕심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일용할양식"을위한 기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의필요를 위한 나머지 두 가지 기도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삶의 필요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그것은살 집을 위한 기도도 아니며,자녀를위한 기도도 아니고,우리의번영을 위한 기도도 아닙니다.그기도는 우리의 죄와 관계된 기도들입니다.먼저주님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우리가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해 준 것같이 우리 죄를사하여 주옵시고...."우리말로 죄라고 번역된 말은 원래 "빚"이라는단어입니다.죄는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빚입니다.죄를짓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고,그분을 무시하는 것이며 그래서 그 분의 영광을 망치고도둑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우리는죄를 지음으로써,그렇게그 분의 가장 소중한 재산에 손해를 끼친 것입니다.그러나,우리는이 빚을 갚을 길이 없습니다.이미손상된 그 분의 영광은 그 무엇으로도 제 자리로 돌릴수 없기 때문입니다.그래서우리는 항상 우리의 크고 작은 빚을 탕감해 달라고기도해야 합니다.우리가우리에게 아주 작은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한 것을보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를 용서해 달라고기도해야 합니다.그빚을 탕감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가장 큰 문제는 양식의 문제가 아니라 죄의 문제입니다.우리는지은 죄를 용서받아야 하며,더이상 닥쳐오는 시험 때문에 죄에 굴복해서는 안됩니다.용서가없으면,그분의 탕감이 없으면 우리는 결코 그 분 앞에 설 수없습니다.그분의 긍휼히 여기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가덧입혀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그 분께 받아들여져그 분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그래서우리의 가장 큰 필요는 죄를 용서받는 것입니다.그빚을 탕감받는 일입니다.도무지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 빚을 주님께서 없애주시는일이 가장 시급합니다.우리는이미 가장 큰 빚을 탕감받았지만,하나님께또다시 빚을 집니다.그중의 가장 작은 빚이라도 우리 힘으로는 갚을 수가없습니다.그래서,우리는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우리의빚을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그 분의긍휼히 여기심을 끊임없이 간구하고 또 간구해야합니다.그리고,그런빚을 더 이상 지지 않게 해 달라고,시험에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그것또한 우리의 힘만으로 되지 않으니 주님께서 도와주시고건져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회원여러분,기도는그 사람의 신앙의 현주소이며,진짜관심사의 표현이며 그 사람의 마음의 그림입니다.그래서성도의 신앙은 결코 자신의 기도를 넘어 설 수 없습니다.그래서우리에게는 참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참된기도를 앞에 던져놓고서라도 그 기도를 향해 가야 하는것입니다.주님께서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는 그 나라와 그의 의를먼저 구하는 사람들의 기도입니다.서기관과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나은 의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사람들의 기도입니다.하늘에배고프고 목 말라있는 이들의 기도이며 사람보다는하나님 앞에서,그은밀히 보시며 하늘의 상으로 갚아주시는 분을 기대하며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그분의 참된 백성들의 기도입니다.이제주님의 기도,그분이 가르쳐 주신 이 위대한 기도를 여러분의 신앙의중심에 놓고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신앙을점검하는 답안지요,돌아가야할기준점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모두의 삶에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이 기도가 참으로회복되기를 바랍니다.우리가주님의 기도를 우리의 가장 진실한 기도,골방에서드리는 은밀한 기도로 삼을 수 있을 때,우리의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 전체를 불태워 향기로운제사가 되게 하는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되어주며,언제나우리를 하나님 앞에 서게 해 줄 것입니다.
우리의기도 덕에 우리의 경건이 세워지고,우리의경건이 우리의 삶을 참으로 아름답게 세워주는 그런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