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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3.02.24. 주일오전 -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2(마가복음 20)

막0409to20 -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2(마가18)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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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마가복음 4장 14-20절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며 씨앗을 뿌리는 농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뿌리시는 씨앗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말씀은 씨앗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꼭 얻기를 기대하는 열매가 있어서 뿌리시는 씨앗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씨앗으로 뿌리는 이유는 그만큼 그 씨앗에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을 뿌린다면 실패할 수 있어도 말씀을 뿌리면 열매를 맺는데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으시기 때문에 말씀을 씨앗으로 뿌리시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5장 10절과 1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 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비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렸다가 그냥 하늘로 되돌아 가는 법이 없습니다. 일단 비가 내리면 그 비는 자신이 할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식물에 스며들어 그 식물에 생기를 주고, 자라게 하며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 때까지 계속 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도 이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듯이 일단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면 그냥 되돌아 가지 않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는 가장 힘있는 도구가 됩니다. 그 증거가 바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것으로 이 세상과 모든 것들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1장은 그것에 대해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맺는 나무를 내라하니 그대로 되어...”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모든 것을 창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도 완전하신 하나님을 기쁘게 할만큼 아름답고 완전하게 만드는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씨앗으로 뿌리시는 것입니다. 그 말씀 속에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이루는 모든 능력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것을 씨앗으로 뿌리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씨앗이 없기 때문입니다. 


씨앗은 최고입니다. 씨앗은 최상의 씨앗이고 열매를 맺기 위한 모든 것이 완벽하게 들어있는 씨앗입니다. 이제 그 씨앗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습니다. 이제 뿌려지기만 하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문제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 바로 그 씨앗을 받아들여 열매를 맺어야 할 땅입니다. 애석하게도 모든 땅들이 다 그 씨앗을 받아들여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열매를 맺게 되는 땅은 오히려 일부분입니다. 대부분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거기에는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장애물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열매맺는 땅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어떤 씨앗은 길가에 떨어졌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길 가가 어떤 땅인지 우리는 아주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땅이 아주 단단한 땅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원래부터 단단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무엇인가 때문에 단단해진 땅입니다. 이런 땅에 씨앗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튕겨져 나옵니다. 아무리 뿌리고 또 뿌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튕겨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어떤 사람이 말씀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경우입니다.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전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주로 아얘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 해당할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진리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알려고 들지도 않습니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언젠가 제가 아는 젊은 집사님 한 분이 자기가 너무 충격을 받았다고 하면서 저에게 이야기를 전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이 집사님은 청년부에서 조장을 맡고 있었는데요. 어느 날인가 성경공부를 하다가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조원 하나가 너무나 당당하게 그러더라는 겁니다. 자기는 복음이건 뭐건 관심이 없고 그저 교회 와서 위로나 받고 용기나 얻으면 된다고 말입니다. 이 조원은 초신자도 아니었습니다. 꽤 오랫동안 교회에 다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집사님이 더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신앙의 초기 단계에서도 그렇지만 성숙해 가는 과정에서도 더 깊은 진리를 알고, 그 진리 안에서 기쁨을 얻는 일에 관심이 없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15절에서 주님은 조금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튕겨내진 씨앗을 사탄이 빼앗아 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사탄이 말씀을 빼앗는다는 이 이상한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사탄이 빼앗으면 그것은 누구의 것이 됩니까? 사탄의 것이 됩니다. 그러면 그걸 누가 이용하게 될까요? 사탄이 이용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가던 방향으로 계속해서 가려고 하는 경향이라는게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두 번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무관심해 하면 결국에는 거기 길이 들게 됩니다. 그러면 나중에는 거절하고 무관심해 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적인 일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그 마음이 어떻게 될까요? 예전의 상태로 남아있을까요? 아닙니다. 이전보다 더 나쁜 상태가 됩니다. 점점 더 단단해 지고, 점점 더 말씀을 거부하며 더 무관심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것이 사탄이 말씀을 집어먹는다는 말의 의미일 것입니다. 



두번째 씨앗들은 돌밭에 뿌려졌습니다. 이미 말씀드린대로 돌밭은 암반 위에 흙이 얇게 깔린 땅을 말합니다. 주님은 이 땅에 씨앗이 뿌려진 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란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사실 이런 땅을 닮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는 가장 빠르게 반응합니다. 흙이 얇으니 말씀을 더 빠르게 받고 또 더 빠르게 싹을 틔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게 다 입니다. 흙이 너무 얇아서 뿌리가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래 견디지를 못합니다. 햇빛이 나오면, 그 말씀 때문에 어려움이 생기면 그 귀한 싹은 말라죽고 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는 것은 너무 너무 좋은 일입니다. 진리가 선포되고 가르쳐질 때, 그 마음에 기쁨이 생겨나는 것은 정말 바람직한 일입니다. 오히려 기쁨이 없다면 그게 문제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기쁨이 말씀을 듣는 이유의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기쁨은 열매가 아니라 싹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정말 설교홍수 속에서 살아갑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유명한 설교자들의 설교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또 설교를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 그 설교자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설교자의 교회로 몰려가는지 모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그것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닙니다.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 그렇지만, 왜 그렇게 좋은 설교자를 찾아다니는가, 왜 그렇게 좋은 설교를 듣고 싶어하는가 하는 것은 반드시 물어보아야 합니다. 만약 그 답이 ‘그냥 좋아서...’가 되면 안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기쁨의 이유가 될 뿐 그 이상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 속에 돌밭과 같은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기쁨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쁨만 얻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마음 속에 뿌리깊은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그런 장애물이 숨어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소비자’, ‘설교의 소비자’가 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대신 그 말씀들을 씨앗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든 거기서 열매를 맺혀지게 해야하는 그런 씨앗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이 있으십니까?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그 기쁨은 여러분에게 말씀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주시고 그 관심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정말 큰 은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에 진리로 인한 기쁨이 생겨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열매가 아니라 열매를 위한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으시고 기쁨이 생길 때는 이제 어떻게 하면 이 새싹을 자라게 해서 열매로 가꾸어 갈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 기쁨을 통해서 맺혀지게 될 풍성한 열매를 보며 그 새싹이 뿌리를 깊이 내릴 땅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말씀이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은 무엇일까요? 그 토양은 바로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4장 2절은 분명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들은 바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말씀을 듣기만 한다고 다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말씀이 원하는 열매를 만들어 내고 듣는 사람들에게 유익과 능력이 되려면 그 듣는 말씀에 믿음을 더해야만 합니다. 믿음은 말씀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유일한 토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대하고 나서 마음에 기쁨이 생기실 때는 항상 믿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셔야 합니다. 그 기쁨은 이제 네가 들은 것에 너의 믿음을 더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싸인이며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우리 마음의 환경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기쁘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그 말씀을 믿괴 신뢰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분 나쁘고 불쾌하게 하는 대상을 믿는 것은 우리 심성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먼저 말씀으로 우리 마음밭을 기쁘게 만들어 주십니다. 말씀이 너의 기쁨의 이유가 되었으니 얼른 그 말씀을 존재 깊숙히 받아들이기 위해서 두터운 믿음의 토양을 준비하라고 말입니다. 말씀을 듣고 기쁨이 생기시거든 얼른 믿음을 준비하십시오. 그래야 그 말씀은 여러분이 시련과 어려움을 당할 때, 여러분을 넉넉히 이기게 하는 하나님의 검이 될 수 있습니다. 


세번째 씨앗들은 가시떨기에 뿌려졌습니다. 처음에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뿌려진 씨앗은 잘 자라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곡식보다 가시떨기들이 더 빨리 자라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가시들이 더 이상 곡식이 자라나지 못하게 막아버립니다. 여름에 논에 가면 꼭 피라는 놈들이 자랍니다. 숫자는 많지 않아도 꼭 있게 마련입니다. 그냥 두어도 될 것 같지만 다 뽑아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피라는 놈들은 자기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곡식에게 가야할 양분까지 다 빨아가 버리고, 그렇게 알곡이 채워지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가시떨기가 하는 역할이 이와 비슷합니다. 가시떨기는 그냥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여러가지 면에서 씨앗이 자라나 열매가 되는 것을 집요하게 방해합니다. 우선 양분을 빨아가 버립니다. 씨앗에게서 열매를 맺을 힘을 빼앗아 버립니다. 또 성장하는 길을 차단합니다. 게다가 그늘까지 만듭니다. 살아남고 성장한다고 해도 온전한 열매를 맺기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을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땅은 씨앗을 잘 받아들입니다. 그 씨앗이 뿌리를 잘 내릴만큼 좋은 땅입니다. 그래서 씨앗은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나기 까지 합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잘 자라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열매를 맺을 힘도, 양분도 모두 가시떨기에게 빼앗겨 버리고, 또 그 가시떨기 때문에 끝까지 자라나지 못합니다. 결국 결실의 꿈은 좌절되고 맙니다. 


아마도 우리들이 닮아있기가 가장 쉬운 땅이 바로 이 가시떨기가 있는 땅이 아닐까 합니다. 저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저는 성도들 안에서 이런 모습을 볼 때가 가장 안타깝습니다. 말씀을 뿌리면 잘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잘 키웁니다. 처음에는 얼마나 열심을 내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바라보면 보이지를 않습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없습니다. 있기는 있어도 자라지 못하고, 영적으로 굉장히 피폐해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끈기와 인내가 부족해서 일까요? 열정이 모자라서 일까요?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가시떨기 때문입니다. 씨앗보다 더 빨리 자라난 가시떨기가 그 성장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 가시떨기가 무엇인지를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 이것이 우리 영혼의 삼대 가시떨기입니다.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 두렵고 염려가 됩니다. 더 많은 재물은 언제나 우리 눈 앞에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런 저런 내가 가지고 싶어하는 것들은 우리 속에서 욕심을 부추깁니다. 우리는 거의 항상 어느 정도는 이런 것들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당연한 것들입니까? 항상 있는 것이니까 그냥 내버려 두어도 괜챦은 그런 것들입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있는 것과 그래서 당연한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입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염려나 유혹, 그리고 욕심은 싸워서 이겨내야 하는 것이지 그냥 내버려 두어도 되는 것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이 매사에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열매맺는 삶을 좌절시키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며 염려하며 사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결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물질적인 유혹, 더 많이 가지고 싶어하는 욕심에 빠져있는 사람이 만족을 알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줍니까? 사람들은 행복과 만족을 위해서 더 많이 가지고 싶어하고 또 욕심을 부리며 죄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삶을 통해서는 결코 행복과 만족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 자체가 이미 행복과 만족을 빼앗아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열매맺는 삶도 가로 막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내 인생의 의미있는 열매들이 아니라 땅에 속한 것들에 묶이고 집착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가 가시떨기가 동기와 이유가 되는 삶을 통해서는 개인적인 행복도, 하나님의 영광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두 마리 토끼는 커녕 한 마리의 토끼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런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허락받았습니다. 스스로도 만족하고 행복하며,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열매맺는 삶을 위한 방법을 허락받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돌밭에서 배운 교훈과 똑같습니다. 말씀의 씨앗이 열매맺게 하는 토양은 언제나 믿음이고, 그것은 결코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으십니까? 나의 모든 것 되시는 분으로 믿으십니까? 그리고 나의 빈틈없는 공급자로 믿으십니까? 바로 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저도 아직 완전하지 않고 이 믿음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기는 하지만, 제 수준에서도 확실히 알게 된 것 한 가지가 있는데, 이 믿음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안된다고 믿으면 절대로 믿음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된다고 믿으면 믿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믿음대로, 믿음만큼 응답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을 통해 우리 삶에 역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토양에서는 근심과 염려, 유혹과 욕심의 가시떨기들이 맥을 추지 못합니다. 그것은 불신앙의 토양에서만 번성하는 악하고 쓴 뿌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로 하고, 결단하며 나아갈 때, 이런 가시떨기들은 힘을 잃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것들의 방해를 뚫고 하나님 안에서 참 행복과 믿음의 능력을 알며 열매맺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 땅은 좋은 땅입니다. 설명이 필요없는 땅이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가 30배, 60배, 100배 맺혀지는 땅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주님도 이 땅에 대해서는 그렇게 설명하실 뿐 별다른 말씀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이 땅에도 반드시 적용되어야만 하는 영적인 원칙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20절이 말하는 것처럼 “말씀을 듣고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땅이 아무리 좋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씨를 뿌리기만 하면 500배, 1000배 열매가 맺혀지는 그런 땅을 닮은 마음이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씨앗인 말씀을 듣지 않고 그 땅 깊숙히 받아들이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 비유 속에 등장하는 땅들은 모두가 다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래서 비유 속의 땅들이 보인 씨앗에 대한 반응은 모두가 다 인격적이고 의지적인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땅은 인격이 없지만 우리는 인격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하고 판단하고 의지하고 또 행동합니다. 이런 것들은 다 무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의식적이고 의지적인 행동입니다. 그런 점에서 듣는 일도 받아들이는 일도, 그리고 열매맺는 일까지도 모두가 다 우리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고 뜻을 움직여서 선택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결코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말씀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일단은 말씀을 들으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받아들이려고 해야 합니다. 또 그  씨앗을 받아들여 열매를 맺으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이 것은 말씀의 씨앗으로 열매를 맺는 모든 일에는 헌신이 꼭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듣는 일에도, 받아들이는 일에도, 그리고 열매를 맺는 일에도... 말씀에 대한 헌신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많은 말씀을 들어도 열매가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말씀에 대한 헌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선은 마음을 깊이 파고 거기 말씀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말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씨앗에게 자신에게 있는 것을 내어 주어야 합니다. 땅이 자신의 양분을 씨앗에게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에서 더해져야 할 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과 순종입니다. 주신 말씀에 믿음을 더하고, 그 믿음으로 순종해햐 합니다. 또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것이 남아있습니다. 바로 시간입니다. 당장 맺혀지는 열매는 없기 때문입니다. 열매가 맺혀지는 일에는 절대적인 시간의 양도 필요하고 열매가 맺혀질 때까지 기다리는 우리의 인내도 필요합니다. 할 수 있는 한 순종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때 조급해 해서는 안됩니다. 열매가 맺혀질 때까지 기다리며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의 영광스러운 열매를 보여주실 때까지 말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 어떤 땅이든 좋은 땅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무관심과 불신앙, 그리고 근심과 욕심, 유혹... 이런 장애물들과 가시떨기들을 믿음으로 제거해 버리고 좋은 땅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이 오늘 말씀을 주신 첫번째 교훈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고 열매를 맺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의 씨앗을 진지하게 듣고 마음과 삶 깊숙히 심고 순종하며 인내하는 일에 헌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두번째 교훈입니다. 


주님은 이 비유를 모든 비유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비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꼭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다른 말씀들을 열매맺게 할 수 있는 그런 비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다 하나님께서 뿌리시는 가장 귀한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땅입니다. 우리들의 영혼의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태도이고, 또 열매를 위한 헌신입니다. 예전에 어떤 상태에 있었든간에 이번 기회에 꼭 좋은 땅, 그리고 더 좋은 땅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씨앗은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씨앗이 나를 배신할까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듣고 받아들이며 인내하기만 한다면 그 씨앗은 항상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로 되돌아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 줄 것입니다. 하늘나라 곳간을 영광스러운 열매로 가득 차게 해 줄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 풍성한 열매를 맺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늘의 옥토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