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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4.18.새벽예배 - 성령을 받으라(요한복음122)


요2019to23 - 성령을 받으라(요한12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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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 요한복음 20장 19-23절



참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라면 아마도 신앙과 관련해서 두 가지는 꼭 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 두 가지는 이 세상에서 성도답게 사는 것과 또 복음을 전하는 증인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두 가지를 제대로 행하면서 살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양심의 가책을 가지고 살아가거나 그런 세월이 오래되면 아얘 그런 일들 자체에 대해서 무관심해 지기도 합니다. 둘 다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성도는 어떻게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고 복음을 전하는 자로 부름받은 소명을 따라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 문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성도다운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들고 또 주님께서 맡기신 증인의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두려움일 것입니다. 거룩하게 살아가고 싶지만 그러면 세상의 죄를 거부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것은 분명히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분명히 어느 정도는 손해나 오해, 심지어는 따돌림까지도 감당해야 하니까요. 복음을 전하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절당하면 어쩌나 무시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도다운 삶을 살아가려면 우리는 반드시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제자들은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들었지만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분명히 자신들도 잡으러 올 것이고 그러면 예수님과 같은 운명이 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 두려움은 그들로 하여금 문을 꽁꽁 걸어잠그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걸어잠근 방 안에는 두려움과 불안함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타나시자 마자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문제를 정확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래서 평강을 잃어버렸는데 주님은 그 평강을 다시 되돌려 주신 것입니다. 반신반의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손에 난 못자국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 주시면서 그들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분명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그러나 지금은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자신들 앞에 있는 사람이 진짜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제자들은 “기뻐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그들은 두려움이나 불안함을 떠나 평강과 기쁨을 되찾았습니다. 


기뻐하는 제자들을 위해서 다시 한 번 평강을 빌어주신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리고는 숨을 내쉬시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고, 그 뒤에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냄을 받은 사람은 보낸 사람과 같다”는 것이 유대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에게서 보냄을 받았다”고 하신 말씀은 “내가 곧 하나님이다”라는 말씀과 동일한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구요.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이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듯이 자신을 대신하여 제자들을 보낸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제부터 너희는 나와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그리고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단순히 개인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보내신 자로, 어찌보면 예수님께서 가지신 권위와 능력을 그대로 가지고 예수님을 대신하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이 세상에 두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셨을 때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하셨고 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하셨듯이 우리들도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하며,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해야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2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셨을 때 행하셨던 일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리고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로 그 일을 맡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말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남의 죄를 직접 용서해 줄 권한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직접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방법은 다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선포되고 그 사람이 복음을 믿으면 그 사람은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선포되지 않고 그래서 복음이 들려지지 않거나 들려지더라도 믿어지지 않으면 거기는 죄사함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통해 바로 이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의무만 생각하면 부담스럽기 그지 없는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권한이 있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하려고 하기만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일과 관련하여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는 말씀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라고 하신 말씀 사이에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시면서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소명을 받고 또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능력있는 복음전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명을 받고 그 소명에 따라 능력있게 살아가는 삶 사이에는 언제나 주님께서 주시는 성령으로 충만해 지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그 핑계만 대고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그래도 이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성령충만해야 능력있고 온전한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우리가 성도답게 살고, 또 복음증거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두가지가 꼭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과 성령충만함입니다. 평강은 부활하신 주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을 때 얻을 수 있습니다. 죽음까지도 이기신 예수님이 나와 동행하신다는 사실, 항상 내 속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평강을 주셨고 또 계속 주고 계심을 믿을 때, 그리고 그 평강가운데 거할 때 우리는 우리를 두렵게 하고 그래서 움츠러들게 하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성령충만할 때, 온전한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항상 주님이 주시는 평강 가운데 거하며, 또 성령충만을 덧입음으로써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한 성도의 삶과 온전한 증인의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