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2115to17 - 세 번째 가라사대(요한125).pdf
본 문 : 요한복음 21장 15-17절
디베랴 바닷가에서의 제자들과 예수님과의 식사는 그렇게 시끌벅적한 파티가 아니었습니다. 예전같으면 서로 즐거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맛있게 식사를 했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큰 잘못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큰 꾸지람 없이 오히려 “밥 먹어라” 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엄하고도 부드러운 음성을 듣고 함께 식탁에 앉은 아이처럼 식사를 어디로 하는지, 그리고 그 음식이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식사를 마쳤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이후에 주님께서 베드로와 함께 나누신 대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대화는 모두 3이라는 숫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번의 베드로를 향한 부르심, 주님의 세 번의 질문, 베드로의 세 번의 대답, 그리고 예수님의 세 번의 부탁… 모두가 3입니다. 먼저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세 번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다시 찾아오신 주님은 예전처럼 베드로를 결코 반석이라고 부르시지 않습니다. 그 대신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부르십니다. 이것은 그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예수님을 알지 못했을 때의 이름입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다시 시몬으로 돌아간 바로 그 자리에서, 그 바닷가에서 새롭게 그를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 크리스챤이라는 이름, 성도라는 새 이름을 얻고도 그 이름이 아닌 옛 이름으로, 옛 삶의 자리로 돌아가서 살 때가 있습니다. 시몬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욕망의 바다 디베랴에서 무기력함과 영적인 패배의식에 빠져서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로 그 자리로 우리를 찾아오셔서 다시 우리를 불러내십니다. 우리의 예전의 이름을 부르며, 제 자리로 돌아오라고 부르십니다. 우리를 일깨우시며,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은혜로운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 때 베드로를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부르시며 다시 찾아가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베드로를 부르신 예수님은 질문하십니다.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같지만 다른 세 번의 질문을 하십니다. 처음의 질문은 함께 있었던 다른 제자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상대적인 질문입니다. 베드로는 그랬습니다. 적어도 거기 있는 사람들보다는 주님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다시 두 번을 더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번에는 그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다른 사람들과 상관없이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주님께 의미있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느냐 덜 사랑하느냐가 아닙니다. 주님은 그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 누구는 믿음이 좋으니, 누구는 누구보다는 믿음이 나으니 하고 키재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신앙에 있어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가, 진심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전같으면 베드로는 주님이 그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그럼요, 저는 정말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미 그는 죽어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던 그의 장담과는 달리 세 번이나 그것도 맹세까지 해 가면서 주님을 모른다고 한 이후입니다. 베드로는 대답합니다. “그래요 주님, 제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고는 대답하지만, 그래도 최종적인 판단은 주님께 맡기고 있습니다.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 사랑에 자신이 없어진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번째 질문했을 때, 그래서, 그는 슬퍼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세번에 걸쳐 질문하신 데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베드로의 주님을 향한 사랑은, 그리고 우리의 주님을 향한 사랑은 그저 주님을 사랑하는 참된 것이 되어야 함을 알려주기 위함이었고, 두번째는 그가 세 번 주님을 배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베드로에서 시몬으로 돌아가 낙심과 슬픔 가운데 젖어있는 그에게 주님은 그의 입으로 그래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세 번 고백하게 함으로써 그를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결코 베드로를 나무라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베드로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셨고, 주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그런 그를 회복시켜 다시 소명을 감당하는 제자로 세우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대답할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이것은 이제 이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이 다가온 예수님의 관심사가 무엇인가를, 그리고 과연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던 그 부르심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한 교회와 그 안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으로 모아놓으신 어린 양을 먹이고 돌보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신 이유였고, 주님께서 맡기실 일의 본질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확실히 하시기 위해 세 번이나 동일한 부탁을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 안으로 부름받아 그 교회와 그 안의 지체들에 대한 나의 책임을 다하는 것까지를 포함합니다.
신앙생활을 자꾸 나 개인의 일로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큰 오해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교회 안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교회를 주님의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고 서로에게 유익을 주어야 건강할 수 있는 그런 몸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중 누가 교회의 도움없이 지금의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성도의 섬김과 목회적 도움이 있었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은 교회로 모인 것입니다. 내가 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교회 안에 있기에 누릴 수 있는 유익을 누리고 있습니다. 예배 자체가 공동체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예배에서 얻는 유익이 있다면 그것은 그 예배가 교회가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지, 내가 예배를 드리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는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 자체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 안에서 자기 자신의 인격과 신앙적인 양심을 책임지는 것도 참으로 귀한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 일에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고 그것때문에 교회 전체가 몸살을 앓게 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그것을 뛰어넘기를 바라십니다. 뛰어 넘어서 우리 보다 어리고 힘없는 지체들, 나의 섬김과 돌봄이 필요한 자들을 든든하게 하고 바로 세워주는 그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그만한 영적인 실력을 갖추어야 하고, 그 일에 대한 거룩한 책임감을 느껴야 하며 또 헌신해야 합니다.
부족하다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부족해도 좋습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작고 미미해도, 그리고 그나마도 근심하며 대답할 수 밖에 없어도 좋습니다. 바로 그 사랑으로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주님도 그것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시몬의 자리로 돌아간 베드로를 부르시듯이 우리의 부족한 자리, 예전으로 돌아간 자리로 찾아오셔서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가 베드로답게 되었던 것은 주님의 부르심에 다시 응답한 그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많은 시간이 지난 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경험한 후였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주님의 말씀대로, 사람을 낚는, 주님의 양떼를 치고 먹이는 반석같은 베드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해도 부르시고 믿어주며 맡기시는 주님의 은혜에 응답하며, 성령님 안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해 감으로써 능히 몸된 교회의 지체들을 섬기며 세워가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