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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7.23. 새벽예배 - 그 처음 표적의 표징은 믿지 아니하여도(출애굽기 18)


출0406to09 - 그 처음 표적의 표징은 믿지 아니하였어도(출18).pdf




본   문 : 출애굽기 4장 6-9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에게 보냈다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한 증거를 요구하는 모세에게 모세가 던진 지팡이가 뱀이 되었다가 꼬리를 잡자 다시 지팡이로 되돌아 오는 이적을 행하게 해 주셨고,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말을 믿지 아니하거든 그대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어제 우리가 살펴 보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 뿐 아니라 모세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애굽과 바로 앞에서 두려워 떠는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가 두려움을 이기게 하기 위해서 그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또 한 가지 이적을 행하게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이 기적도 그래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품에 손을 넣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꺼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그래로 했더니 모세의 손은 심한 피부병에 걸려 하얗게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깜짝 놀라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반복해 보라고 하셨고 모세는 또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자 그 손이 다시 완전히 깨끗하게 치료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은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하나님께서 두번째로 모세에게 보여주신 이적은 첫번째 표적을 보고도 모세를 신임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서 주신 일종의 안전장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번째에 이어 두번째 이적을 주시면서 이 정도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믿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그들이 이 두 가지 기적을 모두 보고서도 믿지 않는다면 그 때는 나일 강의 물을 퍼다가 땅에 부으면 그것이 피가 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한 삼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주셨던 것입니다. 

목사가 되어 일을 하다 보니 목사가 되기 전에는 보지 못했던 신앙에 대한 진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것이 좋을 때도 있지만 정말 저를 힘들고 좌절하게 만들 때가 더 많습니다. 목사는 다른 것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성도들의 믿음을 도와주면서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성도들의 믿음을 도와주다가 발견하게 된 것 신앙과 불신앙에 대한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왜 어떤 사람의 믿음이 자라지 않을까요? 왜 어떤 사람은 그렇게 더디 믿을까요? 정말 믿으려고 하는데, 믿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데 믿음이 생기지 않고 그래서 믿음이 잘 자라지 않고 계속해서 믿음이 없는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일까요? 물론 그런 분들도 있고, 아주 드물지만 그런 분들을 볼 때면 정말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분들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드뭅니다. 대개는 믿지 않으려고 하거나 혹은 참된 믿음에 대해서 관심이 없기 때문에 믿음이 자라지 않는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제가 발견한 믿음 없음의 이유입니다. 


만약 초최한 목동이 나타나서 지팡이를 던져 뱀을 만들고 그 뱀의 꼬리를 잡아 다시 지팡이로 만들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당신들을 애굽에서 건져 내시고 약속하셨던 땅으로 인도해 가시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으로는 절대로 믿음이 생길 수 없을까요? 그것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멀쩡하던 손이 심한 피부병에 걸리게 하고 그 즉시 다시 정상적인 손이 되게 하신다면 그래도 역시 그 사실을 믿기에는 부족할까요? 객관적으로 그 정도로는 모세의 말을 믿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증거가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 보여주신 증거로도 충분합니다. 두번째 이적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세번째 이적까지 갈 필요는 더더욱 없구요. 원래 믿으려고 한다면, 꼭 증거가 필요하다면 첫번째 증거로 충분합니다. 믿으려는 마음만 있다면 그 안에서도 하나님을 볼 수 있었을 테니까요.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에 대한 반응을 말씀하실 때, “표적의 표징을 받는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 말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표적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말이 됩니다. 하나님께 기적은 단순히 자연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적은 우리에게 확실한 믿음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커다란 목소리, 우뢰와 같은 목소리 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이적에 대해서 보여할 반응은 호기심이나 놀라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만약 그 이적 속에서 크게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단 한 번의 기적으로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믿음의 귀가 없다면 오히려 그 기적 속에서 들려오는 우뢰와 같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가 먹어 버릴 수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처럼 계속해서 표적은 구하면서도 결코 참된 믿음에는 이르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든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씩이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적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 없는 모습을 보시고 그냥 내버려 두신다고 해서, 그것이 그래도 괜찮은 상태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때에도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설득하시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은 적어도 참된 믿음은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믿으려 들지 않으면, 자기 속에 있는 믿지 않으려는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악한 마음인지 깨닫고 거기서 돌이키려고 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기적을 경험해도 참 믿음은 생기지 않습니다. 참 믿음은 믿음을 가지려는 사람, 참된 믿음에 대해서 끊임 없이 관심을 가지고 추구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귀한 선물입니다. 물론 그래도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지만 믿음에 이런 측면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려고 애쓰신다는 것, 그리고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하시지만 어느 순간에는 불신앙을 나무라시고 책망하신다는 것은 참 믿음은 우리가 반드시 가지려고 해야하는 것이며 또 가져야만 하는 것임을 알게 해 줍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참 믿음으로 가는 길을 가로 막는 것이 있다면 절대로 그것을 그냥 내버려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장애물을 깨뜨리시고 그 장벽을 허물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영혼 한 구속에 숨어 있는 믿지 않으려는 마음, 그리고 참 믿음에 대한 무관심을 꼭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를 향해 나를 믿고 나의 말을 믿으라고 큰 소리로 외치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외침에 순종하는 더욱 온전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