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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7.24. 새벽예배 -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출애굽기 19)



출0410to17 -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출1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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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출애굽기 4장 10-17절




흔히 우리가 인내하시는 하나님을 표현할 때,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말 오래 참으십니다. 우리의 거듭되는 불신앙에도 우리를 바로 바로 벌 주시거나 혼내지 아니하시고 계속 인내해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믿음이 하루 아침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으로 자라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십니다. 때로는 우리 스스로도 우리가 더디 믿는 것이 굉장히 불안해 질 때도 있지만 그 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인내하시고 기다려 주십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성경을 통해서나 혹은 저 자신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발견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분명히 오래 참으시지만, 우리 생각보다도 더 오래 참고 기다리시지만 그렇다고 한정 없이 끝까지 기다리시는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주셨습니다. 이름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이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불안해 할까봐 일이 어떻게 될지도 알려 주셨고요. 또 지팡이가 뱀이 되었다가 다시 뱀이 되는 이적과 손에 심한 피부병이 생기게 하셨다가 금새 치유되는 이적을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셨다는 증거로 삼게 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덤으로 그래도 안 믿으면 나일 강물을 조금 퍼다가 뿌려서 피가 되게 하라고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모세는 이 과정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을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세가 진짜로 극복해야 할 장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이 아니라 그 자신의 불신앙이었습니다. 모세는 그 동안 자신의 불신앙을 그런 식으로 둘러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지만 지금까지는 잘 참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계속해서 또 불신앙의 모습을 보입니다. 이번에는 자신이 말 주변이 없다는 것을 핑계로 댑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도 조금 열을 받으셨습니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모세는 그제서야 본심을 드러냅니다.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사실 이런 반응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의 바람직한 태도일 수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겸손의 고백이며,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죄인인 줄 알기 때문에 터져 나온 고백이라면 말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이런 대답은 그의 깨지지 않는 불신앙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화가 나셔서 모세에게 말 잘하는 그의 형 아론을 붙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론이 모세의 대변인이 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거두시지 않으시고 모세가 더 이상 그 어떤 핑계도 댈 수 없게 하셨고, 그의 입을 막아 버리셨던 것입니다. 


계속되는 주제이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상황을 보게 되면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모세가 보였던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모세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그가 동족을 돕겠다고 나섰다가 도망자 신세가 된 이후, 그가 얼마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절망하고 실망했겠습니까? 얼마나 이 세상에 대해서 주눅이 들어 있었을까요? 그런 그로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어마어마한 일에 자신을 부르실 때, 사실 그런 반응이 아닌 다른 반응을 보이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렇게 되는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모세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못하는 상태,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그런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종다운 종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자신에게 실망한 상태임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모른 척 하시면서 이제까지 모세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주신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충분한 증거와 앞으로의 보증까지 덧붙여 주셨지만 모세는 여전히 자기 자신만 바라보는 불신앙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도가 지나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화를 내시면서 더 이상 불신앙의 반응을 보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자신의 뿌리깊은 불신앙에 대해서 너무나 관대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도 삶은 이어지고 하나님의 눈에 보이는 징계가 주어지지 않으니까 마치 불신앙이 정상인 양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설교를 해 보면 이런 것을 자주 확인하게 되는데요. 성도들의 현실을 충분히 배려한 현실적인 설교를 할 때는 공감하고 기뻐하지만 믿음으로 살자는 설교를 하면 별로 관심 없어하고 현실감이 없다고 불만을 보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다른 것을 의지하며 살아가는데도 별다른 일이 생겨나지 않을 때, 그 때는 잘 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직은 하나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참고 기다려 주시는 그 마음, 때로는 화도 나시지만 꾹꾹 누르고 계신 그 마음을 말입니다. 우리가 꼭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러셨듯이 우리에게 화를 내시고 무언가 우리 삶에 액션을 취하실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혹 그러시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믿지 못하는 상태, 자신만 바라보느라고 믿음의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상태에 남아있을 필요가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우리 자신만을 보면 도저히 믿음의 용기를 내어 살며 또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손에는 기껏해야 마른 막대기 하나 밖에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도 그렇다는 것을 아십니다. 우리 손에는 그것 밖에 없기에 믿음으로 살면서 이 세상을 극복해 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런 우리를 부르실까요? 그런 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믿음으로 살며 또 세상을 이기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그 막대기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 막대기 하나로도 충분히 애굽과 바로를 이길 수 있는 자신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의 싸움의 승패는 우리 자신의 능력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 싸움은 내가 나를, 그리고 나의 능력을 얼마나 확신하느냐에 달린 것도 아닙니다. 그 싸움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하나님만 믿고 진실로 의지하면서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손에 마른 막대기 하나 밖에 없어도, 심지어는 그것마저 없을지라도 괜찮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고 성숙해 간다는 것은 결국 이것을 얼마나 더 깊고 확실하게 믿느냐 하는 것고 그 믿음에 의지해서 살 수 있느냐에 달려 있고, 우리에게 그 믿음이 더 온전할 수록 우리는 그 믿음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더 확실히 경험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불신앙도 습관입니다. 우리는 이 습관을 반드시 깨뜨리고 참 믿음, 하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날마다 날마다 마른 막대기 같은 자신의 모습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참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