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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5.02.01. 주일오전 - 강하고 담대하라(여호수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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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여호수아 1장 1-9절




오늘부터 우리는 여호수아서를 함께 공부하고 또 묵상하겠습니다. 여호수아서는 아시다시피 모세의 인도를 받아 애굽에서 빠져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제대로 된 하나님의 나라로 탄생하는 이야기가 여호수아서에 기록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동안은 백성도 있었고 왕도 있었고 또 그 나라의 법도 있었지만 영토가 없어 광야를 떠돌아 다니고 있었는데 이제는 영토까지 갖추게 되었으니까요. 그렇지만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이 되는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차지하려면 자기들보다 훨씬 더 강한 원주민들과 전쟁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땅이 어떻게 약속의 땅이냐 그건 결국 전쟁을 해서 빼앗는 것이나 똑같지 않느냐 하실지도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전쟁은 그 승패가 그 전쟁을 치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군사력이 아니철저히 하나님께 달려있었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가나안 땅을 천국에 비유합니다. 그 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고 약속의 땅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가나안 땅과 천국은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천국은 일단 들어가면 더 이상 싸울 일이 없고, 거기는 가나안 족속들처럼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가 없는 의인들의 나라지만 가나안 땅은 그런 곳이 아니니까요. 사실 가나안 땅은 천국이 아니라 우리가 구원을 얻고 나서 살아가게 되는 우리의 인생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합니다. 물질적인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구원얻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라고 할 수 있구요.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는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우리 삶이 천국으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얻은 후에도 우리 삶에는 여전히 갈등과 다툼이 있습니다. 우리 내면에도 갈등이 있고, 우리와 우리 바깥 그러니까 우리와 세상 그리고, 다른 사람들 사이에도 다툼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내가 예수를 믿는데도 내 삶에 이런 어려움들과 갈등이 있느냐고 질문합니다. 그건 당연합니다. 우리들은 지금 천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꾸 쓸 데 없는 오해와 불평에 빠지게 됩니다. 


성도들은 이미 가나안 땅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건짐을 받아 가나안 땅에 들어갔듯이, 성도들은 죄에서 구원을 받아 이미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으니까요. 다르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애굽에서 나온 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 우리는 구원 얻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살아간다는 것만 다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거기 살던 가나안 족속들과 전쟁을 벌어야 했듯이 우리들도 우리 삶의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싸웠던 그 싸움을 그대로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 또한 그 승패가 우리의 능력이나 소유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싸움의 승패는 철저히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설 때, 우리는 우리 삶을 우리를 위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곳을 우리를 위한 복된 곳으로 만들어 가는데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서도 우리를 여전히 예전과 똑같은 자리에서 살게 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 자리에서 예전과 똑같은 고민과 똑같은 두려움과 걱정, 그리고 똑같은 좌절과 실망을 안고서 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이후에도 우리의 인생과 삶의 자리에는 여전히 우리를 힘들게 하는 수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를 걱정하게 하고 두렵게 하고, 좌절하게 하고 실망하게 하는 것들,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일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세상의 풍토와 또 사람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의 내면과 내 인생, 교회와 가정과 직장, 학교라는 우리의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싸우게 하신 그 싸움에서 이기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그 모든 곳을 무늬만 약속의 땅인 그런 곳이 아니라 정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약속의 땅, 하나님 나라로 만들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곳 만큼은 정말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곳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곳이 있습니까? 이 곳만큼은 메마른 사막이 아니라 꼭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 되게 하고 싶은 곳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잘 오셨습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여호수아서 여행에 그런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우리 모두 이 여행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삶의 자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복된 곳으로 만들어가는 방법을 배우시고 그 방법대로 싸워서 바로 그 곳이 가장 복된 땅이 되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과 40년 동안의 광야생활. 그 동안 애굽에서 나올 때 이미 성인이었던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은 동시에 다음 세대를 믿음으로 훈련시키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와 메추라기만 먹고 성인이 된 아이들, 그 오랜 세월을 옷도 헤지지 않고 신발도 떨어지지 않는 기적을 경험한 아이들, 하나님의 능력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직접 보면서 자라난 아이들. 이들에게는 그 40년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앙의 훈련과정이었습니다. 결국 불신앙의 세대였던 전 세대는 가고 새로운 믿음의 세대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그런 만큼 이들에게는 가나안 정복이라는 아주 어려운 임무가 맡겨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일은 모세의 죽음과 더불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새롭게 양육된 세대를 인도할 새로운 리더가 필요했고, 그래서 모세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의 백성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40년을 돌고 돌아 다시 약속의 땅 앞에 와 섰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세가 없습니다. 자신들을 애굽에서 건져낸 능력자, 광야에서의 모든 삶을 책임져 주었던 위대한 지도자의 자리가 비어버린 것입니다. 백성들은 두렵고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모세 없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을까 도저히 확신이 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백성들도 그랬겠지만 정말로 두렵고 당황스러웠던 것은 바로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였습니다. 그 이전까지 여호수아는 모세의 개인비서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그랬기 때문에 모세를 가장 가까이서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지만, 역시 여호수아는 모세가 아닙니다. 모세가 가지고 있었던 능력도 없습니다. 모세가 그 오랜 세월 동안 쌓아 올렸던 신뢰와 권위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모세와 그의 세대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해야만 합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합니다. 어떻게 두렵고 당황스럽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 여호수아는 그 일을 생각하면서 몇 날 며칠을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정말 엄청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영토는 정말 엄청나게 넓은 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영토가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싸워서 얻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땅 덩어리가 크면 클수록 그만큼 더 걱정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변변한 무기도 없었고, 전혀 훈련되지 않은 오합지졸들이었으니 이 말씀이 여호수아에게 마냥 달콤한 이야기로만 여겨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셨습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여호수아는 지금 전혀 강하고 담대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막중한 임무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이끌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또 차지해야 할 땅에서 살고 있는 막강한 가나안 사람들 때문에 두려워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 때문에 약해져 있었고 잔뜩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두려움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내가 모세에게 그랬던 것처럼 너에게도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하는 사람은 모세가 아니라 바로 네가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어제 조금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분명히 장갑을 벗어서 두 쪽 다 주머니에 넣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한 쪽이 없는 겁니다. 꺼내 보고 또 꺼내 보아도 오른쪽만 있고 왼쪽은 어디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앉아있던 곳도 다 뒤져 보았습니다. 저만 찾은 것이 아니라 전도사님도 함께 찾았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점심 식사를 하고 돌아온 후 우연히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뺐는데, 헉! 놀랍게도 제 손에는 장갑 두 쪽이 다 쥐어져 있었습니다. 소름이 다 돋았습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장갑이, 그렇게 작지도 않고 얇지도 않은 장갑이 좁은 주머니 속 한 구석에 숨어있다가 나올 리도 없고, 어디 가출했다고 돌아온 것도 아니고…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전도사님 말처럼 그래도 찾기는 찾아서 다행이기는 했지만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제 머리 속에 맴돌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능성은 한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처음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장갑을 꺼냈을 때부터 제 손에는 주욱 장갑 두 짝이 다 있었는데, 저는 계속해서 한 쪽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또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영원히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그 이전에는 여호수아와 함께 계시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여호수아와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모세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여호수아와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인정하시고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셨으니까요. 하나님은 이전부터 그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여호수아를 떠난 적이 없으셨고, 모세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여호수아와 함께 하고 계셨으며, 또 절대로 여호수아를 버리지 않겠다고 마음 먹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를 통해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계획을 진행시키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여호수아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제가 제 손에 장갑 두 짝을 다 쥐고 있으면서 한 쪽은 없다고 생각하고 그것만 믿었던 것처럼 여호수아는 이미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두려움은 항상 미래를 향해 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부정적인 일들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바로 두려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두려움은 그것이 아무리 깊고 크다고 하더라도 전혀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건강의 문제로 두려워 합니다. 지금 건강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건강한 사람들이 건강 염려증에 걸려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문제 때문에 두려워 합니다. 지금 필수적인 것이 모자랄만큼 가난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나중에 그런 상황이 벌어질까봐 일어날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렇다면 정말 우리는 나중에 건강을 잃게 될까요? 먹고 사는 것이 정말로 부족해 질까요? 지금보다 모든 상황이 더 악화될까요? 아니죠.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 경험으로는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게 지금 두려워 하는 것처럼 그 일이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이렇게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은 사실 전혀 실체가 없는 허상에 불과합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볼 때, 이런 두려움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에서 생겨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우리의 두려움은 그 원인이 다른데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까? 성령님은 지금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십니까? 그러면 정상적인 경우에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실까요? 우리를 버리실까요? 앞으로 그런 순간이 단 한 순간이라도 있을까요? 저는 확신합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일시적으로라도 우리를 버리시고 떠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두려움은 바로 이것을 알지 못하고 또 알더라도 실제로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두려움 자체와 싸우려고 해서는 절대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합니다. 아무리 건강해도 건강을 잃을까 두려워 하게 되어 있고,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그 돈이 사라질까봐 두려워 하게 되어 있습니다. 먹어 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건강을 누려보고 부자가 되어 보면 그래서 건강과 돈에 더 집착하게 되는데, 오히려 그것이 더 큰 두려움의 이유가 될 때가 많습니다. 


사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대안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항상 함께 하시는 신도 없고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는 신도 없으며,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인 신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대안이 있습니다. 충분히 두려워하지 않고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미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며,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절대로 나몰라라 하지 않으실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그 어떤 때에도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그렇게 해 주고 계시니까요.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갔습니다. 그런데 물건을 다 고르고 계산대에 올려놓고 주머니를 뒤져보니 지갑이 없는 것입니다. 큰 일 났죠? 갑자기 당황스러워 집니다. 얼굴은 달아오릅니다. 이미 계산도 끝났는데, 지갑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갑은 이미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탁 놓입니다. 화끈 달아올랐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집니다. 자동으로 그렇게 됩니다. 믿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믿음에는 마치 이미 손에 들려있었던 지갑을 발견하게 되는 일과 같은 힘이 있습니다. 믿음은 새로운 은혜가 흘러들어오게 하는 통로가 되기도 하지만, 이미 있는 은혜를 자기 것으로 누리게 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셔도 우리가 그것을 믿지 못하면 그 엄청난 은혜와 능력은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 분의 손 안에 있으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두려워하고 근심하고 걱정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믿으면 , 정말로 믿고 의지하면 그 은혜의 능력과 부요함은 고스란히 우리의 것이 됩니다. 우리가 느끼고 누리고 맛볼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인 능력으로 변합니다. 내 손 안에 있는 지갑이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으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걱정도 하지 않을 수 있고 근심도 떨쳐 버릴 수 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또 일어날지 확실치도 않은 일 때문에 시간과 마음을 낭비하며 살지 않아도 됩니다. 


믿음을 가지고 살아도 어려운 일과 힘든 일들이 일어난다구요? 물론입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천국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살고 있으니까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믿는 일에 무슨 유익이 있느냐구요?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두려워하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어려운 일들을 끙끙거리며 혼자서 다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도와 주셔도 그 도움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없고 그 도움을 받아들일 믿음의  손이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정말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는 것을 믿는 사람은 그 어려움을 하나님께로 가져 갑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 하나님께 완전히 맡겨 버립니다. 그러면 그 때부터 그것은 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평안이 찾아옵니다. 당장은 힘들어도 결국에는 진짜로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배우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 속에 두려움이 있으십니까? 혹시 두려움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게 되거나 혹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게 되는 일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제 조언을 꼭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두려움의 문제를 끝내 버리겠다고 작정해 보십시오. 성도 여러분, 세상이 다 두려워 해도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을 부어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이것만 믿으면 됩니다. 이것만 확실히 믿을 수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일단 두려움의 문제는 넉넉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우리는 진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인생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됩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일에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일보다 더 유익한 일이 있을까요? 참 믿음을 추구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보다 지혜로운 인생의 선택이 또 있을까요?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진짜로, 정말로,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정말 로 믿어질 때까지 믿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음의 불안함이 평안으로 바뀌고, 두려움이 담대함으로 바뀌는 은혜를 꼭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서 이런 일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내가 함께 할테니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신 후에 또 한 번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계속해서 강하고 담대하게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 여호수아에게 알려 주신 삶의 비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유익과 능력은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정말로 믿을 때, 그 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여기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 때부터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시는 길과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서로 틀어지게 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오른 쪽으로 가시는데 우리는 왼쪽으로 가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누구나 도와 주실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힘 있게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는 사람, 하나님과 다른 길을 가려는 사람들은 그렇게 도우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이 악한 일을 행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로 복되고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차례를 잘 이해하고 거기에 우리의 삶의 길을 맞춰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진짜로 믿으면 그 은혜로 우리는 담대해 지고 강해 집니다. 여기서 부터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 동안 이런 저런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온전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담대해 지고 더 강해집니다. 그래서, 더 순종하기 힘든 하나님의 뜻에도 기꺼이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순종하면 하나님은 더욱 더 온전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욱 더 담대해지고 더 강해지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의 뜻에 즐겁게 순종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담대함과 평강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환경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놓인 가나안 땅과 너무나 비슷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조차도 이 세상의 방식에 대해서 그 어떤 도전도 해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앞에 기가 죽어 두려워 하며 눈치만 보며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성도 여러분, 사실 우리는 그렇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땅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너희가 밟는 땅을 앞으로 너희에게 줄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나의 직장, 나의 가정, 그리고 내 삶의 모든 부분을 나를 위한 약속의 땅으로 받았습니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주는 담대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 나라가 되도록 이미 우리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가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 내 삶의 모든 영역들은 이미 나의 약속의 땅으로 나에게 주어져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절대로 주눅들지 마십시오. 절대로 겁먹지 마십시오. 자신이 없어지고 두려움이 고개를 쳐들 때마다 하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신다는 변함없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다시 믿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그 자리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 싸움이 끝나는 날, 여러분을 두렵게 만들었던 그 이유가 여러분을 위한 승리와 복의 이유가 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루 하루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내가 진짜로 하나님께서 나와 영원히 함께 하심을 믿게 하소서.
  2. 내 삶의 모든 영역들은 이미 나 손에 있는 약속의 땅임을 믿게 하소서. 
  3. 그 담대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