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 2016년 4월 22일 금요일
이제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니엘의 세 친구에서 다니엘로 바뀝니다. 5장과 6장은 우리가 아는 다니엘에 대한 대표적인 이야기들이지요. 그런데, 5장과 6장의 이야기가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이유는 단지 그가 왕의 꿈을 해석해 주었다거나 아니면 그가 사자굴에 들어가서 하루 밤을 보냈지만 상처하나 없이 살아 있었다는 것 뿐만이 아닙니다. 이런 일들도 물론 놀랍기는 하지만 우리가 놀라야 할 내용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다니엘이 왕이 바뀌고 왕조가 바뀌었는데도 줄곧 바벨론의 지혜자들 중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켰을 뿐만 아니라 결국 한 나라의 제상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즘도 그렇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바뀌면 중요한 요직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왕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대에는 더욱더 그랬습니다.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충성심을 중심으로 해서 다스려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한 왕의 신하는 그 다음 왕의 신하가 되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하물며 아얘 왕조가 바뀌면 어떨까요? 그 때는 이전 왕조를 섬기던 신하들은 모두 숙청의 대상이었습니다.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목숨도 보장받을 수 없었지요. 그런데, 다니엘은 놀랍게도 왕이 바뀔 때는 물론이고 아예 나라가 바뀔 때도 변함 없이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고 섭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그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편을 들어 주셔도 당사자가 그 관계에 충실하지 않고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고 계속 지킬 수가 없습니다. 세상사를 보면 오히려 이 부분이 더 크고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금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결론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복을 얻고 그 복을 지켜내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우리 삶의 구체적인 노력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뒤의 것이 없으면 처음에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특별한 복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계속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의 무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정직’이었습니다. 앞에서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을 때도 그랬지만 그의 아들 벨사살이 환상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가지 모두 그 왕에게는 정말 치욕적이고 모욕적인 내용이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뜻을 담고 있었습니다. 신하가 되어서, 그것도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이 왕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려주는 것은 정말 하기 힘든 일이고 또 사실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니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찌보면 과하게 우직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조심스럽게 말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래도 그 뜻을 정확하게 밝혀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은 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까요? 왜 이렇게 과하게 정직한 사람으로 살아갔고 또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다니엘서는 그 답을 분명하게 들려줍니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두려워 하게 되면 그 사람을 기쁘게 하고 그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진실이 무엇인지 정직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고 그 사람이 기뻐할 말만 하게 되어있지요. 그래서 바울은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한다면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 할 때, 그는 정직해 질 수 있고 무엇이 진리인지, 자신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고 그것에 따라 행하게 됩니다.
다니엘은 비록 바벨론과 바사의 고관의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그것은 그 나라의 왕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벨론과 바사에서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지혜자들의 우두머리자리 그리고 나라의 총리대신의 자리는 그저 하나님을 섬기는 통로와 도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리석고 세련되지 못하게 보였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하나님께서 그를 중요한 다른 왕들은 그 자리에서 끌어 내리시면서도 그를 그 자리에서 지켜 주셨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주어진 자신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오히려 그 자리를 통해 하나님만을 섬기려고 했던 그를 하나님께서 더 귀하게 여겨주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 갑니다. 이 세상의 어떤 자리인가를 차지하고 살아갑니다. 교회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우리의 자리가 있지요. 이 모든 자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준 것 같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든지 간에 그 자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자리에서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사람을 섬기고 존중하는 일도 하나님을 더 앞세우고 더 높이는 범위 안에서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지는 것과 우리가 누리는 것, 심지어는 우리의 생명까지도 주님께서 주신 것이고 또 주님께서 거두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받지 못하고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지 않으면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분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너무 어리석고 세련되지 못하게 보여도 말이지요.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인생을 살아서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들을 항상 생각하시고 편들어 주시는 그런 귀한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