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 2016년 10월 5일 수요일
복음이 계속 전해짐에 따라서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애초에 율법이 없이 예수를 믿은 이방인들에게는 아무런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율법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조건으로 알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 중에서 예수를 믿은 어떤 사람들은 이미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에게로 와서 온전한 구원을 받으려면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방인들은 큰 혼란에 빠졌고 이 사람들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동역자들 사이에서 큰 논쟁이 생겼습니다. 결국 이 일 때문에 바울과 몇몇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이 일을 해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도 논란이 크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논란의 마침표를 찍은 것은 베드로의 말 한디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라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에듸 목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베드로의 이 말과 구약의 예언에 대한 설명으로 교회는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은 것과 피를 먹는 것만 피하면 된다고 결정해서 이방인 성도들에게 전하는 일로 이 문제는 해결이 되었습니다.
사실 그러지 말아야 하지만, 교회 안에서도 그 당시 교회 안에서 일어났던 일과 비슷한 일들이 드물지 않게 일어납니다. 주로 그래도 신앙생활을 좀 했다는 사람들, 또 그렇게 자신하는 사람들이 비교적 신앙이 어린 사람들을 가르칠 때 보면 참 바른 소리를 많이 합니다. 물론 그 이야기들 자체는 틀리지 않지요. 그런데, 문제는 신앙이 어린 사람들에게 그런 짐을 지우는 사람들 자신도 자신이 가르친 것을 지키지 않습니다. 마치 자신은 그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다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바른 기준이 있고 바른 신앙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우리는 신앙이 어린 사람들에게 그런 것들을 다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히려 그럴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잘 지키고 있는지, 나는 그런 가르침을 존중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내가 혹시 이런 것들은 그렇게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나 자신은 더 중요한 가치와 신앙의 원리들을 무시하고 있지 않은지 그런 것들도 잘 챙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위선자가 되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도 그러셨습니다. 사람이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도 낙타는 쉽게 집어 삼키는 그런 사람이 되면 안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그렇게 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삼키는 하루살이는 문제를 삼으면서도 내가 삼키는 낙타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말 정말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복음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반대여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낙타를 삼키는 일을 가려내고 비난하는 것 보다는 자신이 혹시 하루살이를 삼키고 있지 않은지를 살피는데 더 열심을 내야 합니다.
나도 지지 못하는 짐을, 그저 그것이 옳다는 이유로 남에게 강요하는 일은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은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언제나 하나님 말씀 앞에서 겸손하며, 가르치고 주장하기 보다는 그 말씀에 먼저 순종하는 그런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