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 2016년 10월 13일 목요일
예루살렘에서의 바울의 행보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죽음을 무릎쓰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상대로 유대인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선 바울이 전에 예루살렘 시내에서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이방인을 성전에 들어가게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바울이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눈으로 보니 전혀 사실이 아닌 것도 그렇게 믿게 되어버린 것이죠.
그런데, 이 오해 때문에 바울이 나타나자 예루살렘 성 안은 그야 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 든 것입니다. 다행히 예루살렘의 치안을 책임지던 천부장이 나서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자기 때문에 예루살렘 온 성안이 유대인, 로마인 할 것 없이 난리가 난 상황에서 바울은 또 다시 천부장에게 자기 동족들에게 이야기를 할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자신은 여기 사람이 아니라 다소 사람이라고 헬라어로 말하면서 말이지요. 천부장은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또 다시 성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 이제 막 잠잠해져 가려고 하는 불길에 기름을 들이 부었습니다. 아직도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그들 앞에서 복음을 믿는 사람을 나서서 핍박하고 죽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던 자신이 어떻게 해서 지금은 그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헌신하게 되었는지를 밝히고,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유대인들은 복음을 듣지 않을 테니까 너는 그들을 떠나서 이방인들에게로 가라고 하셨다는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바울이 이 이야기를 한 것은 그런 식으로 그들을 자극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자기 동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 이유는 유대인들이 그것을 시기해서 자신들도 복음을 믿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아마 여기서도 바울은 그런 마음을 이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왜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믿게 하고 있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려주고 싶기도 했을 것이구요.
그렇지만 이미 그 일 자체에 화가 나 있었던 유대인들은 이 말을 듣고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살려둘 가치가 없다고 하면서 옷을 벗어 던지고 먼지를 공중에 날리며 곧 달려들어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상황을 눈치 챈 천부장은 바울을 영내, 그러니까 로마 군부대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이제는 천부장도 화가 났습니다. 백부장을 시켜서 바울을 묶고 심문하라고 했습니다. 그 때 바울은 숨겨 놓았던 카드를 꺼냅니다. 로마시민을 이렇게 하는 것이 로마의 법이냐고 항의했습니다. 바울을 결박하려던 천부장과 백부장은 갑자기 태도를 바꿉니다. 게다가 천부장도 뇌물을 많이 주어서 겨우 로마시민권을 받았지만 바울은 나면서부터 로마시민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오히려 바울을 두려워 했습니다. 나면서 부터 로마시민을 그런 식으로 다루는 것은 엄청난 잘못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제도 바울의 소명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바울의 이런 모든 행동들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맡기신 소명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꼭 이것 때문만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18절로 가 보면 바울은 얼마 전에 자신이 성전에서 기도할 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니라” 무슨 뜻이지요? 적어도 말씀만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네 말은 전혀 듣지 않을테니 헛수고 하지 말로 빨리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인들에게로 가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도 그럴 수가 없었지요. 왜 그럴까요? 그는 자기 동족들을 너무 너무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들이 자기를 죽이겠다고 결사대를 조직해도,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선동해서 복음 전하는 일을 방해하고 또 몇 번이나 자신을 죽이려고 했어도 말이지요. 또 그 일을 지금 예루살렘에서 똑같이 당하고 있지만 말이지요.
그렇다면 바울은 지금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는 셈입니다. 빨리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인들에게로 가라는 하나니님의 말씀을 거스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대가 되는 일이고 그래서 이 일이 이렇게 복잡하고 꼬여가고 있는 중일까요? 바울은 그런 위기에 처해지고 말이지요.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뜻을 따르는 일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그냥 시키는 대로 말한대로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사람의 마음과 심정까지 헤아려서 거기에 맞춰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명령을 어기는 것이 맞습니다. 말한 대로 한 것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실제를 그런 순종이 더 속깊고 온전한 순종입니다. 그것이 명령한 사람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합니다. 실제로 그 사람이 더 원한 것은 바로 그것이니까요.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순종하는 일을 그저 기계적인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는 기계적인 관계가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드리고 또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우리가 그저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하나님의 뜻이 분명한데 함부로 내 맘대로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항상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마음에 내 마음과 삶을 맞춰가려는 노력을 그만두지 않을 때, 오히려 하나님의 뜻은 나를 통해 더 온전히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신앙이 형식에 흐르지 않고 또 매마른 것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꼭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따라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활은 하나님과의 속깊은 교제가 될 것이고 또 하나님께도 더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고 그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님께 마음을 드린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