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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11.01.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로마서 14-15장)

* 11월 부터는 음성파일을 올리지 않습니다. 새벽예배 설교준비는 하지만 새벽예배에 참석하시는 분들이 없을 때가 많아서 설교를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설교일 : 2016년 11월 1일 화요일




이제까지 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 누가 제일 믿음이 좋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믿음은 말그대로 하나님을 철석같이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고 또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가려고 할 때, 언제나 예수님의 믿음은 우리의 방향타와 목적지가 되어 줍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믿음의 본과 목표로 삼을 때, 항상 잊지 말고 생각해야 할 아주 중요한 것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예수님께 믿음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그 믿음 자체가 예수님께서 살아가신 삶의 모양을 모두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믿음을 닮아야 한다는 말 속에는 예수님의 믿음에서 나온 예수님의 삶을 닮아야 한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믿음도 자기를 주장하는 수단이 되고 또 자기를 자랑하는 이유가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주장이 세어지고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를 높이게 됩니다. 믿음이 어리고 약한 사람들보다 자신이 더 옳고 더 높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믿음이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옳고 하나님의 방식이 옳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믿음이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하고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겸손해 지지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목소리를 낮추지 목소리를 높이지 않습니다. 나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니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이 성장하면서 더 목소리가 커지고 자아가 강해지는 것은 참 이상한 일입니다. 그 말은 결국 우리가 잘못된 신앙의 길을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높아지고 자기 주장이 세 지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용납하는 폭이 좁아집니다. 믿음이 어린 사람들,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못 마땅해 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그래서 그들을 비난하거나 비판하게 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우리 예수님을 우리 믿음의 기준으로 놓고 보면 잘못되어도 한 참 잘못된 모습입니다. 우선 이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못 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쉽게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그 사람을 자기 기준을 만족시켜 주어야 할 도구로 보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기준으로 보면 우리가 얼마나 못 마땅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대신 우리를 받으시고 용납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대신 지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그냥 내버려 두고는 우리를 받으시고 용납하실 수가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받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잘났어도 용서받은 죄인이고, 계속해서 예수님의 용서가 있어야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우리들은,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도 서로 받으라, 너희도 서로 받으라” 우리는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보아도 서로 받지 않을 권리나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 봐야 같은 죄인이고, 그래봐야 같은 인간이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서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니까요. 


특히 이 일을 더 제대로 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믿음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예수님을 더 많이 알고, 예수님을 더 많이 닮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하나로 만들 책임이 믿음이 더 좋은 사람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형제요 자매인 성도들을 받지 못하면, 그것은 그저 어떤 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받으신 사람을 내가 거부한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면 함부로 이렇게 할 수 없겠지요. 그런 실수를 했다가도 금새 마음을 고쳐 먹고 마음 아파하며 다시 그 형제와 자매를 용납하려고 애쓸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성숙함은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가 약하고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모습 속에 고스란히 담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좋아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을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성숙해질수록 우리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져야 합니다. 믿음은 항상 나를 겸손하게 만들고 낮아지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믿음 때문에 더 겸손해 지고, 믿음 때문에 더 폭 넓어지며, 믿음 때문에 더 많이 사랑하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서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우리 주님을 많이 닮은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