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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11.18.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고린도 후서 7-8장)





설교일 : 2016년 11월 18일 금요일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주님을 따르며 복음을 전했던 바울의 삶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장 영광스러웠지만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고생도 그런 고생이 없는 그런 삶이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바울이 비록 그 길을 억지로 걸어간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 그런 삶을 일부러 선택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길이 마냥 즐겁고 기쁘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고난이 심하고 고통이 심각해 질 때면 그도 마음이 약해질때도 있었고 견디기 힘들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 하나님은 바울에게 사람을 보내셨고 그 사람을 통해서 바울을 위로해 주시곤 하셨습니다. 그 위로는 분명히 사람을 통해서 얻은 위로였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위로이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7장 4절 이하에서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제는 그 어려운 형편에서 벗어나 그 날을 기억하면서 자신에게 그런 위로와 힘을 주었던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감사를 표시하고 또 자신이 그들을 얼마나 자랑스럽고 감사하게 여기는지를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우리의 모든 환란 가운데에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 도다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란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도다 그러나 낙심한 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원래의 상황은 무척 좋지 않았습니다. 사실 바울이 자기가 당한 어려움을 이렇게까지 표현한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는 서슴 없이 두려움이라는 단어와 낙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럴 때도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바울이었지만 그런 바울조차도 두려움에 빠지고 낙심에 빠질만큼 정말 그가 당한 고난은 모든 방면에서 그를 우겨싸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고, 소명감이 투철해도 때로는 이럴 수 있습니다. 두려움과 낙심에 빠져 허우적 거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필요한데, 특히 사역자들에게 위로란 바로 성도들입니다. 자신과 함께 했던 성도들, 자신이 돌보고 있는 성도들이 가장 큰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위로하실 때도 그런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디도를 보내서 고린도의 성도들이 그런 처지에 있는 바울을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있는지를 전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다윗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가 온 것 뿐만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성도 여러분, 교회의 유익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교회의 지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침체와 낙심, 두려움으로부터 건져주고 회복시켜 주는 하나님의 강하고 능력있는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위로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혼자서는 일어서지 못할 때, 혼자서는 회복하기 힘들 때, 성도가 서로 주고 받는 위로는 그 사람을 일으켜주고 다시 성도로 살아갈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 위로를 그렇게 필요로 했고, 그 위로 덕분에 다시 힘을 얻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면 우리들에게는 이 위로가 얼마나 더 많이 필요할까요?


또 한 가지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가 했던 한 가지 일을 크게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들도 힘이 들지만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예루살렘의 성도들을 위해서 큰 금액의 헌금을 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그들을 칭찬하면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너희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서 다른 이들에게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균등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시면서 가르치시려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이런 뜻입니다. 만나는 아시다시피 누구에게나 딱 적당한 양으로 주어졌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받는 것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딱 적당하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분이시라는 것을 정말로 믿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많이 가지려고 애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많은 것을 주시면 그것을 그 때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것입니다. 자신의 것은 하나님께서 적당히 부족함이 없이 채워주실 것을 믿고 있으니까요. 


하나님의 뜻은 성도가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위로도 나누고, 필요한 것도 나누고 나누는 사람들로 서로에거 서로가 가진 것을 나눠주어서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어서 누구나 균등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교회에 바라시는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초대교회는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그 뜻에 최선을 다해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참 지체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유익한 그런 교회로 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조각 나 있고 서로 서로 경쟁을 벌이는 교회들이 이런 참 교회됨의 원리를 회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교회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균등케 하는 원리를 배우고 그 원리를 실천하는 그런 교회가 되고 그런 성도들이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그리고 우리 교회를 이런 교회다움을 지닌 풍성하고 넉넉한 교회들이 되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