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분문 : 시편 25편 8-13절
지난 번에는 온유한 마음,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고 가난해진 마음 자체가 온유한 사람이 받는 가장 큰 복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그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하며 형편 없는 지를 알기 때문에 마음이 낮아질 대로 낮아진 사람이 바로 온유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유한 사람은 쉽게 하나님을 찾습니다. 더 쉽게 하나님을 부르고 도움을 청하며 더 온전히 하나님께 의지합니다. 결과는 분명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게 되고, 또 그 은혜의 능력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세상이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온유한 마음을 성경이 그렇게 보석처럼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온유한 마음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마음이며 그래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온유한 사람이 죄와 상관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온유한 사람도 부족하고 불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여전히 죄의 유혹에 취약하고 또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온유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분명하게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그가 자신이 저지른 죄를 분명하게 인식하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길러 보면 특별히 기르기 힘든 아이들이 있는데요. 그런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교육하기 힘든 아이들은 아마도 자신이 잘못을 하고서도 그것이 잘못인 줄 모르는 아이들일 것입니다. 교육이라는 것은 바른 것을 받아들일 때도 이루어지지만 많은 경우 잘못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시점에서 시작되는데, 이런 아이들은 아예 여기서 부터 막혀 버리니 그만큼 바른 교육이 힘들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또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자녀인 우리들을 양육하고 훈육하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우리는 바른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기도 하지만, 반대로 우리에게 있는 잘못된 것을 고치기도 합니다. 그러면 과연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양육하실 때, 하나님의 자녀답게 잘 성숙해 가게 될까요?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온유한 마음을 가진 사람, 낮고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마음이 있어야 자신을 더 쉽게 자기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더 쉽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느 한 순간도 완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믿고 그것을 따라가기만 하면 될만한 존재들이 못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은 언제나 우리의 눈과 생각을 흐려지게 하고 어긋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 없이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 앞에 우리 자신을 세우고 배우고 또 배우며 양육받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 일이 더 쉽게 그리고 자주 일어날수록 그만큼 우리의 삶은 더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11절을 보면 다윗은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 후에,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꼭 선택해야 할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구절만 보면 마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만 꼭 선택해야 할 길을 가르쳐 주시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그렇게 가르치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최선의 삶을 살기를 바라시며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니까요. 그렇지만 온유한 사람들만이 그런 하나님의 가르침의 가치를 알고,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택할 길’을 자신의 길로 받아들입니다. 온유한 사람들만이 자신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판단을 신뢰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3절은 그 결과를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라” 먼저 온유한 사람은 언제나 그 영혼이 평안을 누립니다. 왜 그렇지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로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며, 지극히 선하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을 자신의 길로 받아들였으니 거기에는 그 사람의 영혼을 불안하게 만들고 뒤흔들어 놓을 그 어떤 것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평안하지 않은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아닌 다른 것을 뒤쫓고 있거나 혹은 지금 겉으로는 하나님을 따라가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다른 길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자는 그 영혼이 평안합니다.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길을 자신이 가야할 길로 받아들이며 살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온유한 자는 그 자손이 땅을 상속받게 됩니다. 여기서 자손과 땅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언약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들입니다. 그래서 자손이 땅을 상속받는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루실 때, 그 주인공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 자손 뿐만 아니라 온유한 사람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때로는 이 시편을 지은 다윗처럼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만 찾아야 하는 그런 경우도 있지만, 결국에는 영원한 나라를 물려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뜻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이런 복을 누리는 이유도 그가 온유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마땅히 가야 할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나 욕심을 내려놓고 고집 부리지 않고서 말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마땅히 ‘택해야 할 길’은 단지 그 길이 바르고 바람직한 길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대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바른 길’과 우리의 삶을 ‘복되게 하는 길’이 서로 다른 길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길을 따라 살아가는 일을 방해하지요.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바른 길이 바른 길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 길을 바른 길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 길을 바른 길로 정하셨을까요? 우리가 그 길을 따라갈 때, 결국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그리고 우리 자신도 가장 복되고 잘 되는 길이기 때문에 그 길을 바른 길로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가장 바른 길이 가장 선한 길이고, 가장 선한 길이 가장 유익하고 복된 길이니까요. 그래서 바른 길은 항상 가장 선하고 유익한 길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온유한 사람들은 교만한 사람보다 훨씬 더 쉽게 이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들에게는 자기가 정한 길이나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보다는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길이 더 좋은 길이라는 겸손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들은 그 길을 가는 동안 영혼의 평안함을 누릴 뿐 아니라, 그 인생의 결론이 참 좋습니다. 온유한 사람들은 비록 열매는 더디 맺을 수 있지만 마치 가장 좋은 땅에 가장 좋은 씨앗을 뿌린 것 같은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자신이 죄인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또한 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배우기를 좋아하고, 그렇게 배운대로 살아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온유한 사람들의 두번째 복은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길이 가장 선하고 유익하고 확실한 길이니 그 길을 더 쉽게, 더 기쁘게 따르는 온유한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혼의 평안과 자기 인생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얻게 될 것이라고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시편에서 다윗이 말해 준 온유한 자의 복과 똑같습니다. 우리는 온유한 심령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가지고 우리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온유한 주님께 배울 수 있고, 우리의 마음의 쉼을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 위에서 누리는 영혼의 평강도 온유한 사람의 것입니다. 하늘의 상속자가 되는 복도 온유한 사람의 것입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이 온유하신 분이시고,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시는 것도 온유하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온유함을 가치있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도 온유함은 그다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힘있는 사람,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이 대접받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닮은 온유함을 발견하기를 원하시고, 온유한 사람에게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온유한 마음을 회복시켜 주셔서 온유한 자에게 주시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