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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10.21. 새벽예배 -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출애굽기 63)






본   문 : 출애굽기 18장 13-27절




어떤 사회나 혹은 개인의 속사정은 그 사회에 속해 있는 사람이나 당사자가 제일 잘 알 것 같지만 그것이 항상 그런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항상 그런 상태로 살아왔기 때문에 사회나 집단 안에 있는 사람들이나 그 개인 자신이 오히려 진짜 모습도 잘 모르고 또 문제가 있어도 그 해결책을 모를 때도 있습니다. 저는 이제는 한 교회의 목사가 되었지만 부목사로 임지를 옮겨 다닐 때마다 그런 경험을 하곤 했습니다. 그 교회 안의 성도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고 또 알더라도 그 해결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사실 저 자신이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했던 것도 어떤 선배가 저에게 들려준 딱 한 마디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저는 스스로의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그 문제는 그저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그 선배의 한 마디가 제 입장에서는 진짜로 저의 인생을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람은 원래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게 그렇게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우선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능력도 재능도 지혜도 그리고 자원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공급만 받으면 다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과 공급 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 모든 재능을 다 가지고 있지 않고, 한 사람이 아무리 지혜로워도 그 지혜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 개인의 삶도 혼자의 힘으로 풍성하고 충분할 수 없지만, 그 사람이 속해 있는 사회나 공동체 또한 탁월한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힘과 능력의 한계 때문에도 그렇지만 또한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지혜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나 혼자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해 귀를 닫고 사는 사람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공동체가 바깥을 향해서 문을 걸어 잠근 공동체입니다. 요즘 우리가 소통이다 불통이다 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그것은 무언가 하지 않아도 되는 멋지고 고상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꼭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자기 바깥 세계에 대해 문을 닫고 사는 사람은 그 사람 자신 뿐만 아니라 그 사람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소통할 줄 모르는 불통의 사람은 절대로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를 찾아왔을 때, 있었던 두 번째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드로가 모세와 함께 있으면서 조금 이상한 모습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모세는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고, 백성들을 하루 종일 그 앞에서 장사진을 치고 있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모두들 너무 힘들어 보여서 이드로는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느라고 생겨나는 이런 저런 갈등들을 해결받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세를 찾아오는데 그것을 모세 혼자서 다 처리하다 보니 생겨날 수 밖에 없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그 일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을 당연한 것이고 가장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방식은 생각조차 해 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이드로는 조금은 어이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드로가 보기에는 그것만큼 비효율적이고 모세와 백성들을 지치게 만드는 일은 없었으니까요. 하루 종일 그렇게 한 들 몇 건이나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은 다음 날 또 거기 나와야 하고 모세는 다른 일들은 하지 못하고 계속 그 일에 매달려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일은 반복되고 또 반복될 것입니다. 일을 그렇게 처리하는 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또한 이드로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뻔한 해결방법이 있는데도 정작 그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그 해결 방식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요. 


바로 이것이 훈수를 두는 사람들이 가지는 유리한 점입니다. 훈수를 두는 사람이 꼭 그 훈수를 받는 사람보다 탁월한 능력이나 지혜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훈수를 두는 위치에 있다는 것 자체가 그 훈수를 받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 주는 역할을 하게 해 주니까요. 꼭 국가대표 선수들보다 능력이 탁월해야만 그들의 코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력은 뒤쳐질 수 있지만 선수가 뛰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코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드로는 이런 답답한 상황을 해결해 줄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그것은 모세와 백성들 사이에 중간 지도자들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 중에서 능력있는 사람 그러니까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뽑아서 10부장, 50부장, 100부장, 1000부장을 세워서 그들이 단계 별로 백성들이 가지고 오는 소송들을 해결하게 하면 모세는 모세대로 자신이 진짜로 해야 할 일들을 할 수 있고, 백성들은 백성들 대로 시간도 절약하면서 문제는 문제대로 해결할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모세는 무릎을 쳤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장인의 말을 모두 수용하고 그대로 체계를 세웠습니다. 모세에게 올라오기까지 그 아래에 네 단계가 있으니 모세는 정말 정말 중요한 일을 빼고는 재판에 관여할 일이 없어졌고 그래서 자신이 해야 할 일로 되돌아 갈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불통의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모세보다 카리스마 넘치고 모세처럼 탁월하고 지혜로운 지도자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또 다 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모세는 이렇게 자기 바깥을 향해서 열린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든지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의 지혜와 능력의 도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더 풍성해지고 온전해 지려면, 또한 우리의 교회가 그런 은총을 누리려면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우리 모두가 서로를 향해서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나 혼자서는 절대로 충분할 수가 없다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그것이 다른 사람의 충고이든 아니면 실제적인 도움이든 간에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있을 때, 나의 삶과 일, 그리고 교회는 더욱 더 풍성하고 온전하게 세워져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고 도움을 받는 것은 절대로 자존심 상하거나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나의 약점을 드러내는 일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나의 약점을 보강하는 방법이고 또 내 삶을 더욱 더 풍성하게 만들어 가는 하나 밖에 없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지혜와 도움을 제공해 주십니다. 항상 바깥 세계를 향해 열려있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이들을 위해서 열린 마음으로 도움을 주며 또 다른 사람들이 제공해 주는 도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하고 풍성한 삶의 태도를 개인의 삶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 잃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람들 사이에 두신 그 은혜를 잃어버리지 않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