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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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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3.새벽예배 - 세 번째 가라사대(요한복음 125) 본 문 : 요한복음 21장 15-17절 디베랴 바닷가에서의 제자들과 예수님과의 식사는 그렇게 시끌벅적한 파티가 아니었습니다. 예전같으면 서로 즐거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맛있게 식사를 했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큰 잘못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큰 꾸지람 없이 오히려 “밥 먹어라” 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엄하고도 부드러운 음성을 듣고 함께 식탁에 앉은 아이처럼 식사를 어디로 하는지, 그리고 그 음식이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식사를 마쳤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이후에 주님께서 베드로와 함께 나누신 대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대화는 모두 3이라는 숫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번의 베드로를 향한 부르심, 주님의 세 번의 질문, 베드로의 세 번의 대답, 그리고 예..
2013.04.22.새벽예배 -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요한복음 124) 본 문 : 요한복음 21장 1-14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모여있던 다락방에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 있던 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 볼 수 있는 정말 놀라운 경험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을 파송계획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홀연히 사라지졌습니다. 이 일로 제자들은 절망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뿐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너무 놀라운 일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통해서 주님의 생전의 말씀이 하나 하나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잔뜩 큰 기대를 했겠지만, 이상하게도 주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시지 않으셨습니다. 온갖 기대를 가지게 해 놓고 나중에는 소식조차 없는 사람처럼 주님은 기다리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지 않으..
2013.04.19.새벽예배 - 믿는 자가 되라(요한복음 123) 본 문 : 요한복음 20장 124-31절 열 두 사도 중의 한 명인 도마의 별명은 ‘의심많은 도마’입니다. 도마가 이런 별명을 얻었던 것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도마의 모습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문을 꽁꽁 걸어잠그고 두려움 가운데 떨고 있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날 도마는 불행히도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어디가서 무슨 일을 하다 왔는지 모르지만 느지막히 나타난 도마는 제자들로부터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거기 모여있던 다른 모든 제자들이 똑같은 증언을 하는데도 도마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우리가 주를 보았다!’라고 아무리 말하고 또 말해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고 그 대신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2013.04.18.새벽예배 - 성령을 받으라(요한복음122) 본 문 : 요한복음 20장 19-23절 참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라면 아마도 신앙과 관련해서 두 가지는 꼭 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 두 가지는 이 세상에서 성도답게 사는 것과 또 복음을 전하는 증인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두 가지를 제대로 행하면서 살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양심의 가책을 가지고 살아가거나 그런 세월이 오래되면 아얘 그런 일들 자체에 대해서 무관심해 지기도 합니다. 둘 다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성도는 어떻게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고 복음을 전하는 자로 부름받은 소명을 따라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 문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성도다운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들고 또 주님께서 맡기신 증인의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두려움일 것입니다. 거룩하게 살아가..
2013.04.17. 새벽예배 - 어찌하여 우느냐(요한복음 121) 본 문 : 요한복음 20장 11-18절 베드로와 요한은 빈 무덤만 확인하고서 금새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전형적인 남자의 반응이죠.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이미 두 번째 예수님의 무덤에 온 것이지만 두 사람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여전히 무덤에 남아있었습니다. 잠시 동안은 무덤 밖에서 울기만 하다가 이제 직접 무덤 안을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안에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예수님께서 누우셨던 그 자리에 하나는 머리쪽, 하나는 발쪽에 앉아있었습니다. 물론 이들은 천사였지만 마리아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천사가 물었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마리아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했던 말만 반복했습니다.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알..
2013.04.16. 새벽예배 - 아직 알지 못하더라(요한복음120) 본 문 : 요한복음 20장 1-10절 안식 후 첫날 새벽, 그러니까 첫번째 부활절의 새벽이 찾아왔습니다. 안식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막달라 마리아는 아직 날이 밝기도 전에 예수님께서 장례되어진 무덤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제자들보다도 더 빨리 용기를 내어서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이런 행동은 정말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이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막달라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그에게서 일곱 귀신을 내쫓아 주셨고, 그 때부터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고, 그 때 이후로 예수님을 돕고 섬기는 자리에 있게 되었던 여인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여인들 ..
2013.04.15.새벽예배 - 요셉과 니고데모(요한복음 119) 본 문 : 요한복음 19장 38-42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들로부터 아주 오랜 세월동안 인간이 간직해 왔던 미덕들을 하나씩 하나씩 빼앗아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 관심, 기쁨, 감사, 나눔…… 세상은 더 풍족해 가고, 더 편리해져 가지만 그런 점에서 사람의 마음은 오히려 더 빈곤해져 가고 있고 텅 비어져 가고 있다는 것은 신불신을 막론하고 모두가 다 지적하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일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게 손상을 받거나 희미해져 버린 미덕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용기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현대인들은 모두가 다 겁쟁이가 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용기가 없어지는 것은 우리가 점점 더 가치나 의미보다는 이익에 민감해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용..
2013.04.11.새벽예배 - 사랑하는 제자가(요한복음117) 본 문 : 요한복음 19장 25-27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천천히 죽어가고 계셨습니다. 그 죽음은 승리를 위한 죽음이었고 부활을 위한 죽음이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났고, 제자들도 뿔뿔이 흩어져 예수님 곁을 떠났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여전히 십자가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인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사랑하시는 제자”도 그 사람들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말합니다. 학자들은 이 “사랑하시는 제자”는 바로 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이었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떠나는데, 모든 사람이 버리는데 끝까지 그렇게 버림받는 사람과 함께..